<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토론, 논증, 탐구

 

 

토론은 철학 교육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 새로운 견해를 만나고,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사고력을 향상시킨다. 반론을 접하고 그것을 재반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또한 철학 토론은 하나의 자극제이자 강력한 청량제로도 작용할 수 있다.
철학 토론은 대체로 비공식 토론회, 대학의 개별 지도시간, 세미나, 질의응답시간 등에서 참가자들이 얼굴을 서로 마주한 채 이뤄진다. 과거에는 편지교환을 통한 토론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대의 철학자들은 편지보다는 인터넷을 선호할 것이다.
편지나 이메일을 이용한 ‘비동시적’ 토론과 달리 현장에서 얼굴을 맞대고 진행되는 ‘실시간’ 토론은 장점이 많다. 실시간 토론 특유의 지적 에너지와 신속한 반응은 생각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교수들이나 동료 학생들을 상대로 직접 철학 토론을 해보면, 그 진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안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직접 상대의 비판에 맞서 자신의 입장을 진술하고 변호해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물론 인터넷을 이용한 철학 토론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비동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라면, 인터넷 토론은 토론기술보다는 문장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노련한 철학자의 철학적 사고를 직접 목격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철학 전문가가 개념을 탐색하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고 비판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공부가 될 수 있다. 철학의 특정 분야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분야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과 직접 토론해보는 것이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전문 철학자를 상대로 토론하면 토론의 주제에 관한 글이나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특정 주제를 향한 철학자들의 뜨거운 열정은 학생들의 공부의욕을 부추기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철학은 지적인 게임이 아니다. 철학은 우리가 삶에 관해,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관해 던질 수 있는 심오한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철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제기되기를 바라지 않는 거북한 질문, 즉 무사안일complacency과 자기기만을 깨뜨릴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주 좁은 범위의 관심사를 갖고 살고 있다. 우리는 주택융자금을 어떻게 갚을지, 새 자동차를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늘 저녁식사를 위해 무엇을 요리할지 따위를 고민한다. 철학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한걸음 물러나 더 큰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그간 당연시했던 것들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내가 볼 때 지금까지 한걸음 물러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 즉 자기 삶을 점검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깊이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20세기의 소중한 교훈들 중 하나는, 인간은 아무리 ‘문명화’되었어도 도덕적 순응주의자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제시하는 도덕적 주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곤 한다. 나치 독일에서 르완다 사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지배적 흐름을 맹목적으로 따라만 갔다.
일반인의 눈에는 철학 토론이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한 사람이 어떤 요점을 제기하자마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비판한다. 마치 토론 참가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렇게 진행되는 토론도 많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의 철학 토론의 특징이다. 토론자들은 의견을 제시하고 비판을 받아들인다. 철학은 세미나실, 인쇄물, 인터넷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판과 반박, 공격과 방어를 통해 발전하고 성장한다.
치열한 토론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공격당하는 느낌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어떤 주장과 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철학자들이 누군가의 생각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상대를 철학자로서 존중하고 있다는 표시다. 철학 토론의 취지는 진리에 다가가는 것, 비판과 담쌓은 생각에 반대하는 것, 잘못된 생각을 합리적인 견해로 대체하는 것이다. 어떤 주장에 대한 비판은 개인을 겨냥한 잔인한 공격이 아니라 해당 주제의 발전을 꾀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단이다.
부정적 논리에 대한 비난, 즉 긍정적인 진리를 확립하지 않은 채 특정 이론의 약점이나 실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행위에 대한 비난이 오늘날 유행하고 있다. 그런 부정적 논리는 사실 궁극적인 결과로서는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명칭에 걸맞은 긍정적인 지식이나 확신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할 때마다 우리의 생각을 접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반론을 자기 입장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일종의 자극제로 삼으라는 말이다.
철학공부는 단순한 말싸움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해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계가 있다. 논쟁의 기술을 배우고 반론에 대처하기 위한 열쇠는 모든 쟁점에서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고, 적절한 논증을 바탕으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다. 철학적 논증은 수사법에 의존한 설득이 아니라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철학 토론이 언제나 찬성과 반대가 부딪히는 논쟁은 아니다. 철학 토론에서는 해석이 따르고,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도 수반되며, 철학 텍스트에 관한 더욱더 깊이 있는 통찰력과 이해도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때로는 토론의 목적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유도하는 것, 어떤 철학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주장을 전개하는 까닭을 이해하는 것, 어떤 철학자가 언급한 말의 의미나 그것이 중요한 까닭을 이해하는 것 등이 될 수도 있다. 철학 토론은 흠잡기가 아니다. 철학 토론은 생각의 창의적 교환일 수 있고, 특정 주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탐구일 수 있으며, 기존의 익숙한 사고방식을 새로운 상황에 응용하는 과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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