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선조 복희伏羲와 여와女娲
전설적인 황제 복희伏羲와 여와女娲는 중국인의 선조입니다. 복희의 정식 이름은 태호太昊이며, 기원전 29세기에 뱀의 몸을 가지고 신神과 같이 신비스럽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몇몇 초상화에 나타난 복희는 나뭇잎 화관을 쓰고 산에서 나온 모습이거나 동물가죽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가 점占에 사용되는 팔괘八卦를 만들어 문자의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전하나 확실치 않습니다. 그는 짐승을 길들였고, 백성에게 음식을 익혀 먹는 법, 그물로 낚시하는 법, 철로 만든 무기로 사냥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16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에는 그의 아내 혹은 누이로 알려져 늘 함께 다녔던 동반자 여와女媧와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중국 신화에서 중매인仲媒人의 수호 여신으로 받들어지는 여와는 복희의 아내로, 중매인의 규범과 결혼의 규범을 세우는 데 이바지했고 남녀 사이의 올바른 행실을 규정했다고 합니다. 여와는 흔히 인간의 얼굴과 뱀이나 물고기의 몸으로 묘사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화서국華胥國에 화서華胥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녀가 뇌택雷澤에 갔다가 우레 신雷神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복희를 낳았다고 합니다. 복희는 머리는 사람이지만 몸은 뱀의 형상이었습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이란 책은 송宋나라 때 이방李昉이 편찬한 백과사서百科辭書입니다. 태종太宗의 명으로 977년에 착수하여 983년에 완성시킨 1,0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입니다. 이 책이 완성되자 태종이 하루에 3권씩을 읽어 1년 만에 독파讀破했으므로 책명을『태평어람』이라 하였답니다. 이 책은 송대宋代 이전의 고사를 아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사이부四夷部에 신라와 고구려 등에 관한 기록이 보여 우리나라 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태평어람』에 따르면, 복희는 네모지게 쌓은 단方壇 위에 앉아 팔풍八風의 기운을 살핀 후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합니다. 복희에 관한 내용은 이 책 저 책에서 편편이 전해오는데, 신선방약神仙方藥과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 서적『포박자抱朴子』에 따르면, 복희가 거미를 스승으로 삼아 그물을 엮었다고 하며, 초楚나라의 굴원屈原과 그 말류末流의 사辭를 모은 책『초사楚辭』「대초大招」편에 따르면, 그가 거문고를 만들어 <가변駕辯>이란 노래를 지었다고 하고, 송宋나라의 나필羅泌이 엮은『노사路史』에 따르면, 그가 혼인할 때 한 쌍의 사슴가죽으로 예물을 삼도록 했으며,『태평어람』에 따르면 희생을 잡아서 푸줏간을 채웠고,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그가 하늘 사다리인 건목建木을 타고 하늘에 올랐고, 손에 규구規矩를 들고서 일월日月의 운행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복희와 마찬가지로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의 형상을 한 여와는 하루에 그 모습을 70번이나 바꾸었다고 합니다. 여와는 두 가지 큰일을 했는데, 오색의 돌을 불에 제련하여 하늘의 틈을 메웠고, 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여와가 사람을 만듦으로서 혼인의 신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성교는 하늘과 당의 성욕을 자극할 수 있는데 하늘과 땅의 성교가 바로 운우雲雨입니다. 후한後漢의 사상가 왕충王充의 저서『논형論衡』「순고편順鼓篇」편에서는 고대 풍속을 말하면서 “비가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여와에게 제사지낸다”고 했습니다.
혹자는 복희와 여와 모두 무당으로 복희는 남자 무당이고 여와는 여자 무당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복희는 전설의 삼황三皇 가운데 첫째로, 무당, 제사장, 국왕의 역할이 집중된 인물로서 용을 토템으로 삼았던 부락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황하유역에서 출토된 채색도기에 그려진 요정 문양을 여와 신화와 밀접하게 연관 짓는데, 이는 여와가 요정을 토템으로 하는 부락의 수령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신화에서 복희와 여와는 남매나 부부 사이입니다. 묘족苗族의 전설에는 복희와 여와는 남매 사이였는데, 홍수가 난 뒤 인적이 끊어지고 둘만 남게 되어 부부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