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신앙과 이슬람주의 정치는 다르다
세계평화 위해 반드시 구분돼야
이슬람교 하면 떠오르는 건 무엇일까.
관대하고 자애가 넘치는 알라신이나 코란, 초승달이 걸린 이슬람 사원을 꼽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대개는 9·11 테러나 지하드, 자살폭탄 등의 폭력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종교전쟁을 자행하고 제국주의의 토대를 제공했던 기독교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지고, 이웃나라를 억압한 경험이 적은 이슬람교는 폭력의 동의어로 인식되고 있다. 13억 명이 이슬람교도란 점을 감안하면 전 지구적 오해와 몰이해가 아닐 수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이것은 서방에서 퍼뜨린 음모라고 주장한다. 반유대주의를 부르짖으며 돌팔매질을 하는 대부분의 아랍인들도 여기에 열렬히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이긴 하지만 내부에서 문제를 찾는 시각도 있다. 이슬람교로부터 이슬람주의를 떼어 내야 이슬람교가 온전하게 자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는 책 머리말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슬람교 신앙과 이슬람주의의 종교화된 정치가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라고.
불교 기독교와 함께 3대 종교인 이슬람교에 대해 비무슬림들은 상당히 무지한 편이다. 무슬림에 대한 무지는 서양사회보다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었던 동양이 더한 편이다. 그래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는 대개 무시되거나 일축되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이 차이점은 13억 무슬림과 비무슬림이 지구상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려면 반드시 규명되고 알려져야 할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슬람주의의 특징은 여섯 가지다. 세계적 정치질서의 심각한 반동적 비전, 대량살상 반유대주의 도입, 민주정치와의 대립, 폭력의 사용, 법률의 이슬람법화, 순결에 집착한 나머지 거의 꾸며 낸 이슬람 전통에서 진정성을 찾으려는 행태 등이다.
유대인과 십자군을 원수로 낙인 찍기, 동남아의 승려나 아프리카의 정령 숭배 주민에 대한 공격,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양극화 부추기기,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이슬람혐오증 꾸며 내기 등은 이슬람교가 갈 길이 아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경전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이슬람교를 훼손시키고 있다. 서양의 위협에 기인한 바 크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은 무슬림공동체를 주장하며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대항할 참호를 파는 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다. 이슬람주의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슬람교의 신앙을 존중하되 이슬람주의를 냉철하게 비판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런 결론이다. 저자의 냉철한 주장은 아쉽게도 과격파들의 무장해제를 바라는 서방의 불순한 의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서 눈앞의 현실이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저자 바삼 티비는 평생 독일과 미국에서 머물며 이슬람주의를 비판해왔다. 그래서 그의 저작이 서양의 물적 정신적 토대 위에 구축된 반이슬람주의자의 주장이라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으로 독재정권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아랍인들의 분노를 감안해 보면, 이슬람교와 이슬람주의에 대한 구분이 상당히 시사적이고 유효한 일로 여겨진다.
바삼 티비 지음/유지훈 옮김/지와 사랑/488쪽/3만4천 원
이상민 선임기자 yey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