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처하는 방식

 

형제들이여, 내가 이 길을

왜 올바른 길이라 일컫는가?
이 길이 고통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고통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고통과 직접 대면하게 하므로
올바른 길이라 일컫는 것이다.

 

살면서 어려움을 겪지도 무엇을 잃지도 실망해보지도 않았던 척해 보았자 소용없다. 행복의 길이라고 알려진 모든 길에도 반드시 불행과 슬픔 그리고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행복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언제나 바로 지금 이곳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도 있기 마련인데, 그런 고통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고통을 부정하는 피상적인 접근법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좌절감을 맛보게 할 뿐이다.
우리의 슬픔과 행복 사이의 관계는 깊다. 배가 고프면 음식의 가치를 알게 된다. 목이 마르면 우리는 물이 소중한 걸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우리 삶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상실은 우리가 지닌 것의 소중함을 가르쳐준다.
고통은 우리가 공감하는 방법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우리에게 처음부터 저절로 그런 마음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데, 뇌가 아직 덜 발달한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거의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창피하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 전에는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다면 거절당하거나 다른 문제들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다. 운동선수 모집에 꼴등으로 뽑히고, 학교 시험이나 그 밖의 시험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관심을 받게 되는 경우처럼 어려서 겪었던 모든 어려움은 우리를 더 자애롭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며 연민을 느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이처럼 어려서 겪은 어려움과 함께 성인이 되어서 겪은 어려움이 없었던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돌보는 능력은 애초부터 없었을 테고 자연스럽게 몸에 배지도 않았을 것이다.
붓다가 깨우침을 얻고 처음 설법하실 때 그는 고통을 무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을 모든 웰빙과 행복의 바탕으로 삼았다. 사실 그가 애초에 영적인 여정을 떠나게 된 계기도 고통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어리고 철없던 싯다르타 왕자는 늙고, 병든 망자를 보면서 깊은 실존적 위기에 빠졌다. 영리하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에게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건 상당히 충격적인 현실이었다. 이 같은 현실이 너무 괴로웠으므로 호화스런 궁궐 생활에 안주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현실이 무엇인지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했다.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심리적인 방어 기제를 동원해서 삶의 진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붓다의 전략은 달랐다. 그는 고통을 똑바로 바라본다. 고통을 못 본 체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귀를 기울이고, 응시하며, 고통과 친구가 되어야 함을 붓다는 알았다. 고통을 깊이 살펴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깨우침은 없다. 진정한 행복도 없다. 우리가 겪는 고통을 왜곡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바라보는 일이 깨우침으로 가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우리의 슬픔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고통의 사슬에 얼마나 철저히 매여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 사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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