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 중에서 서른여덟 번째가 규暌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규暌 소사小事 길吉
회망悔亡 상마물축喪馬勿逐 자복自復 견악인見惡人 무구无咎
우주우항遇主于巷 무구无咎
견여예기우체見輿曳其牛掣 기인천차의其人天且劓 무초유종无初有終
규고暌孤 우원부遇元夫 교부交孚 려厲 무구无咎
회망悔亡 궐종厥宗 서부噬膚 왕往 하구何咎
규고暌孤 견시부도見豕負塗 재귀일거載鬼一車 선장지호先張之弧 후설지호後說之弧 비구혼구匪寇婚媾 왕往 우우즉길遇雨則吉
첫 번째 효사爻辭는 규暌 소사小事 길吉입니다. 규暌(외면할 규)는 작은 일小事에서만 길吉하다는 말이므로 큰일에서는 규의 길흉을 논할 수 없습니다. 작은 일에서만 길하다 함은 규가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결단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규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제까지의 삶 대신 새로운 삶을 찾아 인생을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회망悔亡 상마물축喪馬勿逐 자복自復 견악인見惡人 무구无咎입니다. 회망悔亡은 돌아서는 스스로에 대해 한 점의 후회도 없다는 말이므로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규가 실현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상마물축喪馬勿逐은 잃어버린 말喪馬(죽을 상)을 다시 찾으려 하지 않는다勿逐(쫓을 축)는 말이므로 과거의 기득권이나 이권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규暌를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자복自復은 스스로를 회복한다는 말이므로 자성自性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규의 목적이자 본질입니다. 이렇게 후회와 미련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를 회복한 뒤에는 악인을 만나도見惡人 허물이 없다无咎고 했습니다.
세 번째 효사爻辭는 우주우항遇主于巷 무구无咎입니다. 우연히 거리에서于巷(거리 항) 주군을 만나도遇主(만날 우) 허물이 없다无咎는 말이므로 이는 규暌의 실행이 개인적인 차원의 용단에 따른 것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경우에 해당합니다.
네 번째 효사爻辭는 견여예기우체見輿曳其牛掣 기인천차의其人天且劓 무초유종无初有終입니다. 앞의 두 구절에서는 규暌를 실천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일체의 후회며 미련을 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 하나 때문에 더 불행해지지 않도록 먼저 조치를 취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규暌를 실천한 이후에 부닥치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규暌는 한 번 실천했다고 해서 바로 행복해지는 그런 행위가 아닙니다. 견여예기우체見輿曳其牛掣는 소가 끌어야 할 큰 수레其牛掣(끌 체)를 사람이 끌고 가는 것을 본다見輿曳(끌 예)는 말이므로 짐승 같은 노예생활을 하는 처참한 사람의 모습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其人은 천차의天且劓(코 벨 의)까지 당했습니다. 천차의天且劓란 코를 베고 이마에 죄수의 표식을 새겨 넣는 형벌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난날의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된 사람입니다. 규暌를 실현하고 보니 이제야 비로소 나로 인해 그토록 참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무초유종无初有終!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만 아파하다가无初 나중에야 도울 방법을 찾는다有終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이제야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규고暌孤 우원부遇元夫 교부交孚 려厲 무구无咎입니다. 규暌의 실현 후 외로움孤(외로울 고)에 처해 있던 중에 우연히 믿고 존경할 만한 사람元夫을 만나遇 믿음으로 우정을 나누니交孚 위험하기는 하지만厲 허물은 없다无咎는 말입니다. 규暌는 당연히 외로운 결단이자, 결행 이후에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행동입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회망悔亡 궐종厥宗 서부噬膚 왕往 하구何咎입니다. 규暌의 실현 후에 나를 진실로 믿고 도와줄 가족이나 친지가 있다면 그렇게 외롭고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궐종厥宗(그 궐) 서부噬膚(씹을 서, 살갗 부)는 종족이나 가족厥宗이 고기를 씹어준다噬膚는 말이며, 이는 곧 친지들의 경제적 도움을 상징합니다. 그 앞에 회망悔亡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자신 일체의 감정적 후회나 미련을 이미 버린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회나 미련을 완전히 버렸고, 친지들의 경제적 기원이 있으니, 그 나아감往에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何咎. 앞날이 순탄하다는 뜻입니다.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규고暌孤 견시부도見豕負塗 재귀일거載鬼一車 선장지호先張之弧 후설지호後說之弧 비구혼구匪寇婚媾 왕往 우우즉길遇雨則吉입니다. 규暌에는 고난과 이의 극복 과정이 따릅니다. 규고暌孤는 앞서의 구절과 마찬가지로 외로운 규의 생활을 말하며, 이하에서 설명할 내용이 규의 실현 후에 맞게 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고난에 대한 것임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고난의 행군인 것입니다. 견시부도見豕負塗는 진흙塗을 잔뜩 바른負(질 부) 돼지豕(돼지 시)를 본다見는 말이며, 재귀일거載鬼一車는 그 돼지들이 귀신과 같고鬼(귀신 귀) 한 수레一車에 가득 실렸더라載(실을 재)는 말입니다. 진흙을 잔뜩 바른 귀신인지 돼지인지 모를 어떤 정체불명의 것들이 한 수레에 가득 실려서 오고 있음을 본다는 말이므로 이는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에 대한 불길한 징조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우선 화살을 들고 나가 쏘아 댄다先張之弧(활 호). 화살을 쏘는 일은 내 나름의 저항이자, 내가 가진 무기, 나의 재능을 총동원해 맞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화살을 쏘면서 가만히 보니 귀신이 아닙니다. 판단력이 회복되고 혜안이 갖추어지면서 수레에 실린 것들의 실체가 점점 보이기 시작합니다. 진흙 속에 든 것들의 실체가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냥 돼지이다. 돼지는 재물이며 친구입니다. 비록 진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지만 돼지는 돼지입니다. 진흙을 뒤집어쓴 돼지들이 왔다는 것은, 나보다 더 못한 삶을 살던 한 떼의 약자들이 나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을 맞아들여 오히려 화살 쏘는 법을 가르친다後說之弧고 했습니다. 활쏘기는 나만의 장기이자 나의 재능이니, 이들과 더불어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알고 보니 그들은 도적이 아니라匪寇 역시 혼인을 청하러婚媾 온 사람들입니다. 혼인을 청한다는 것은 넓게는 동반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친구들인 것입니다. 이상이 규暌의 실현 후에 겪게 되는 판단력의 혼란, 후유증,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얻은 동지들과 더불어 나아가매往 우연히 비를 만나遇雨, 길吉하다고 했습니다. 비가 오면 돼지들이 뒤덮고 있던 진흙이 씻겨 나가 그들의 자성이 회복되고,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비雨는 하늘의 도움을 상징하니, 마지막으로 하늘의 도움을 얻어 다 같이 길吉하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