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 중에서 서른여섯 번째가 명이明夷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이明夷 리간정利艱貞

명이우비明夷于飛 수기익垂其翼 군자우행君子于行 삼일불식三日不食 유유왕有攸往 주인유언主人有言

명이明夷 이우좌고夷于左股 용증마장用拯馬壯 길吉

명이우남수明夷于南狩 득기대수得其大首 불가질정不可疾貞

입우좌복入于左腹 획명이지심獲明夷之心 우출문정于出門庭

기자지명이箕子之明夷 리정利貞

불명不明 회晦 초등우천初登于天 후입우지後入于地

 

첫 번째 효사爻辭는 명이明夷 리간정利艱貞입니다. 명이明夷(오랑캐 이)는 밝음明이 상처(夷=傷)를 입었다는 말이며, 밝은 기운이 하늘로 뻗쳐오르지 못하고 땅속으로 흩어져버린 형상입니다. 빛이 어둠에 묻힌 꼴이며, 지혜가 암흑에 가린 상태입니다. 이런 운을 타고난 사람을 명이지자明夷之者라고 합니다. 리간정利艱貞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리利의 시절과 이를 마무리하는 정貞의 시절이 어렵다艱(어려울 간)는 말이며, 혹은 리利와 정貞을 연결하는 시점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충분한 공부와 수행을 했지만 결국 날아오르지 못하는 용의 신세입니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명이우비明夷于飛 수기익垂其翼 군자우행君子于行 삼일불식三日不食 유유왕有攸往 주인유언主人有言입니다. 명이우비明夷于飛는 명이지자明夷之者가 날아오르려 한다는, 수기익垂其翼은 그 날개翼(날개 익)를 접는다垂(드리울 수)는 말입니다. 힘차게 날갯짓을 해서 날아올라야 할 순간에 날개를 접게 되는 게 명이明夷라는 것입니다. 군자의 행함君子于行에 사흘 동안 먹을 것이 없고三日不食, 그렇게 나아감에有攸往 주인의 꾸중이나 듣게 됩니다主人有言. 삼일불식三日不食은 사흘이나 굶는다는 말이니, 세 번이나 도전했어도 소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요,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도 군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 가지 요소는 하늘의 허락天時과 땅의 보살핌地運, 그리고 인덕人德입니다. 즉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입니다. 군자가 행함에 사흘을 굶주린다는 말은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도 돕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주인유언主人有言은 주인에게서 충고나 조언, 꾸지람을 듣게 된다는 뜻이입니다. 이렇게 어둡고 캄캄한 것이 명이입니다明夷.

 

세 번째 효사爻辭는 명이明夷 이우좌고夷于左股 용증마장用拯馬壯 길吉입니다. 명이지자明夷之者가 왼쪽 허벅지于左股(넓적다리 고)에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었습니다夷. 운이 나빠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을 맞은 것일 수도 있고, 포악하거나 사악한 군주를 만나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닙니다. 구원하되用拯(건질 증) 말馬이 장壯하니 길합니다吉. 재빨리 구원의 말을 타고 용감하게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명이明夷의 시절이니 계속 우물쭈물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나아가 뜻을 펼 때가 아니라, 오히려 뒤로 물러날 때인 것입니다.

 

네 번째 효사爻辭는 명이우남수明夷于南狩 득기대수得其大首 불가질정不可疾貞입니다. 명이우남수明夷于南狩는 명이지자明夷之者가 병력을 조련하기 위해 남쪽으로 겨울 사냥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전田은 여름 사냥으로 귀족의 놀이이며, 수狩(사냥 수)는 겨울 사냥으로 군대의 훈련이 그 목적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득기대수得其大首, 우연히 적의 우두머리를 잡았습니다. 정말로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보통 때라면 큰 상을 받을 수도 있으나, 명이지자明夷之者에게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명이明夷의 운이 닥쳤을 때는 정당한 공功조차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까지貞 서둘지疾 말라不可고 했습니다. 질疾(병 질)은 급急하다는 뜻이며, 우연히 세운 공을 인정받기 위해 급히 서두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입우좌복入于左腹 획명이지심獲明夷之心 우출문정于出門庭입니다. 이 구절도 명이明夷의 운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입우좌복入于左腹(배 복)은 왼쪽 뱃속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이는 상대방의 속마음, 즉 숨겨놓은 마음을 알아챈다는 뜻입니다. 획명이지심獲明夷之心(얻을 획)은 자신의 운이 명이明夷의 시절임을 알아챈다는 말이니, 지금은 자신의 때가 아님을 깨닫고 새로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출문정于出門庭(뜰 정)은 속해 있던 집단에서 나온다는 말이니, 상대의 속셈을 알고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 있던 곳에서 탈출하라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기자지명이箕子之明夷 리정利貞입니다. 기자지명이箕子之明夷는 기자箕子(키 기)가 알고 있는 명이明夷의 세계, 혹은 명이를 알고 있는 기자라는 뜻입니다. 명이를 아는 기자란 자신이 지금 명이의 세계에 있음을 하는 현자, 그래서 나아가고 물러날 바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현자를 말합니다. 명이明夷의 세계에 있긴 하지만 그 전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현자입니다. 그러므로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으며, 끝에는貞 이롭다利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불명不明 회晦 초등우천初登于天 후입우지後入于地입니다. 자신이 명이明夷의 세계에 있음을 아는 기자箕子와 정반대의 사람이 불명不明이고 회晦(그믐 회)입니다. 명이지자明夷之者는 지혜라도 갖추었지만 불명지자不明之者는 때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혜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불명不明이고 회晦(그믐 회, 어둡다)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아갈 길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도 세상에 처음初 나설 때는 그 기세가 하늘로 날아오를 듯합니다登于天(오를 등). 하지만 명이明夷의 세계에서는 이런 기상이 결코 오래갈 수 없으니, 자중하고 근신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명지자不明之者는 자중하고 근신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더 어둡습니다. 그러니 결국 나중에는後 땅속으로 추락하고 맙니다入于地.

 

『주역』에서는 때를 얻지 못한 현자賢者, 지혜를 갖추었으나 이를 세상에 펼치지 못하는 군자君子를 명이지자明夷之者라고 했습니다. 진지자晉之者가 천시天時를 얻어 자신의 경륜과 사상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군자라면, 명이지자明夷之者는 경륜과 지혜는 갖추었으나 운運과 시時를 얻지 못해 뜻을 펴지 못하는 현자인 셈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뜻과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입지와 하늘의 때를 얻어야 뜻을 펼 수 있습니다. 이상을 펼 수 있는 만남이 진晉이라면, 때가 어긋남이 명이입니다明夷. 명이明夷의 운을 만난 명이지자明夷之者라도 처음 뜻을 펼치러 나아갈 때는 당당하고 힘찹니다. 새가 날아오를 듯한 이때의 모습만으로는 진지자晉之者와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 번의 도전이 모두 실패로 끝나니 도와주던 윗사람도 꾸짖고 떠나며 아랫사람도 따르지 않습니다. 일을 이루어 공을 세워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어려움을 당합니다. 원대한 뜻을 품고 출사出仕했으나 왕을 잘못 만나 뜻을 펼치지 못합니다. 처음과 끝이 다른 용두사미龍頭蛇尾의 형상입니다. 명이지자明夷之者가 그나마 심신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운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을 안전하게 유지하면서 명이明夷의 기氣가 사라지기를 기다려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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