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殷 나라의 성탕成湯과 재상宰相 이윤伊尹
은殷나라의 성탕成湯(이름은 천을天乙)은 “맑은 물을 바라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백성을 살펴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재상宰相 이윤伊尹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현명하신 말씀입니다. 남의 훌륭한 말을 귀담아 듣고 따른다면 반드시 도덕이 발전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긴다면 훌륭한 인물들이 왕궁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더욱 노력하옵소서.”
어느 날 성탕이 교외로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치고 “천하의 모든 것이 내 그물로 들어오도록 해주옵소서” 하고 축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에 성탕은 “아니,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잡으려 하다니!” 하고 말하며 세 방면의 그물을 거두게 하고 이렇게 축원하도록 했습니다.
“왼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왼쪽으로 가도록 하고,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오른쪽으로 가도록 하소서.”
이 소문이 제후들의 귀에 들어가자 그들은 “탕의 덕은 진실로 지극하구나. 그 덕은 이제 금수禽獸에까지 이르렀도다” 하고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성탕은 하夏나라를 정벌하고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몰아낸 뒤 천자天子의 지위에 올라 전국을 평정했습니다. 천하를 재패하고 천자의 지위에 오른 지 29년 만에 성탕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큰아들 태정 또한 일찍 세상을 떠나 둘째아들 외병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외병도 3년 만에 죽고 그 뒤를 외병의 아우가 이었지만 그도 4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상 이윤은 태정의 아들 대갑을 도와 천자의 자리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이윤은 태갑에게 할아버지 성탕을 본받아 후세에 이름을 남길 훌륭한 천자가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걸왕이 나라를 망친 이유를 말해주며 늘 그것을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태갑은 이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매일 향락에만 눈을 팔았으며, 점차 포악해지면서 정치는 내팽긴 채 성탕이 만들어놓은 모든 규정도 없애버렸습니다. 태갑이 제2의 걸왕이 되어 나라를 망칠 것을 염려한 이윤은 그를 궁궐에서 추방하여 성탕의 능이 있는 동궁에 기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감시하여 외출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성탕의 능 옆에 기거하면서 태갑은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그리고 항상 백성들에게 너그럽고 현명한 정치를 펼쳤음을 깨닫고 날이 갈수록 변해갔습니다. 그는 근검절약하고 어진 사람이 되고자 뜻을 세웠고, 책을 읽고 수양에 힘썼으며,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일을 직접 거들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성실했으며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태갑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윤은 그가 달라졌음을 확신하고 왕의 복식을 갖춰 들고 몸소 동궁으로 가 태갑을 모시고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태갑은 이윤을 보자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윤은 백 세까지 천수를 누렸습니다. 이윤이 세상을 떠날 무렵 태갑은 이미 죽었고, 그의 아들 옥정이 왕위에 있었는데, 그가 천자의 예를 갖춰 이윤의 장례를 궁궐 가까이서 지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윤의 높은 인품을 기려 그를 성인으로 추앙했습니다. 은나라는 이후 16대 제을 임금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신辛이 즉위했는데, 그가 바로 폭군으로 역사에 악명을 남긴 주紂 임금입니다. 은나라는 17대 주 임금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고 주周나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