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 중에서 스물세 번째가 박剝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剝 불리유유왕不利有攸往
박상이족剝狀以足 멸蔑 정貞 흉凶
박상이변剝狀以辨 멸蔑 정貞 흉凶
박지剝之 무구无咎
박상이부剝狀以膚 흉凶
관어貫魚 이궁인총以宮人寵 무불리无不利
석과불식碩果不食 군자득여君子得輿 소인박려小人剝廬
첫 번째 효사爻辭는 박剝 불리유유왕不利有攸往입니다. 박剝(벗길 박)은 나아감有攸往에 불리不利하다는 말이므로 박의 기운이 덮치면 앞뒤가 막혀 나아갈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박은 깎아내는 것이며, 서로 연관된 기운이 막히고 대화의 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을 말합니다. 극한의 고통이 따르며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음기陰氣가 강맹해져서 양기陽氣가 거의 소멸된 상태입니다. 악운이 거듭거듭 몰려오는 시기입니다. 어려움과 혼란이 닥치고 재난과 파괴가 이어집니다.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不利. 고통도 지나가고 불행도 지나가며 슬픔도 언젠가는 지나갑니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박상이족剝狀以足 멸蔑 정貞 흉凶입니다. 다리足가 부러져剝 협상 테이블狀 자체가 괴멸하니蔑 끝내貞 흉凶하다는 말입니다. 대화와 교섭 자체가 중단된 상황입니다.
세 번째 효사爻辭는 박상이변剝狀以辨 멸蔑 정貞 흉凶입니다. 박상이변剝狀以辨은 교섭과 대화는 하되, 서로 합의될 수 없는 의제로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박상이족剝狀以足보다는 나을 수 있겠으나 역시 흉凶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번째 효사爻辭는 박지剝之 무구无咎입니다. ‘剝 剝之 无咎’를 줄인 구절입니다. 박剝은 박剝으로 대해야 허물이 없다는 말이므로 어려운 때는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면 박의 기운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처하라는 말이 아니라 박의 기운에 순응하면서 먼 미래를 보고 고통을 인내하라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박상이부剝狀以膚 흉凶입니다. 박상이부剝狀以膚는 협상이 깨어져 그 결과를 피부膚(실갗 부)로,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절을 암시합니다. 교섭과 대화를 위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박剝의 물결만 천지에 진동합니다. 그러니 흉凶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관어貫魚 이궁인총以宮人寵 무불리无不利입니다. 고통과 절망의 시간은 감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주역』은 불리하지 않은无不利 정도의 기본자세만을 강조합니다. 관어貫魚(꿸 관)는 물고기를 말리려고 꼬챙이에 꿰어놓은 것을 말하고, 이궁인총以宮人寵은 그와 같이 한 집宮(집 궁) 안에 있는 사람人을 모두 똑같이 총애寵(사랑할 총)하라는 말입니다. 박剝의 시기에는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잦습니다. 이럴 때에 아랫사람을 모두 평등하게 사랑하면 미워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석과불식碩果不食 군자득여君子得輿 소인박려小人剝廬입니다. 종자種子(碩果)를 먹지 않고不食 남겨둔 군자는 수레를 얻지만得輿, 소인小人은 오두막廬마저 깨뜨린다剝는 말입니다. 박剝의 기운이 넘치면 흉년, 기근, 전쟁 등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누구나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몹시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훗날을 위해 종자만은 먹어 없애지 말고 아껴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큰일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군자가 수레를 얻었다함은 이런 박剝의 고통을 마침내 이겨내고 리利의 시절로 들어섰음을 의미합니다.
박剝은 음기陰氣가 극도로 강해지고 양기陽氣가 거의 소멸된 시기입니다. 많은 것이 파괴되고 상상도 못했던 재해가 몰려옵니다. 기본적으로 박剝은 불리하고, 그중에서도 세 가지가 극흉합니다極凶. 박상이족剝狀以足, 박상이변剝狀以辨, 박상이부剝狀以膚가 그것입니다. 이때의 상狀은 상床이므로 밥상이나 책상이라고 할 때의 그 상을 말합니다. 즉 대화의 테이블이며, 행정과 사무를 보는 곳이고, 음식을 먹는 곳입니다. 박상剝狀이란 이런 테이블이 깨어지고 엎어진 형국을 말합니다. 이처럼 깨어지고 엎어진 형국에도 세 가지가 있는데, 이족以足, 이변以辨, 이부以膚인 것입니다. 이족以足은 상다리 자체가 부러진 형국이니 협상의 테이블 자체가 없어져버린 상황입니다. 이변以辨은 상은 있으되 쓰지 못하는 형국이므로 말하자면 협상은 계속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잡히지 않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부以膚는 이족이나 이변이 계속되어 마침내 그 고통이 우리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모두가 한기寒氣를 느끼는 상황을 말합니다. 박剝은 박剝으로 풀어야 합니다. 박剝의 운이 진행할 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순종해야 하며, 무욕無慾의 상태라야 몸과 마음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