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 중에서 스무 번째가 관觀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觀 관이불천盥而不薦 유부옹약有孚顒若
동관童觀 소인小人 무구无咎 군자君子 린吝
규관闚觀 리여정利女貞
관아생觀我生 진퇴進退
관국지광觀國之光 리용빈우왕利用賓于王
관아생觀我生 군자君子 무구无咎
관기생觀其生 군자君子 무구无咎
첫 번째 효사爻辭는 관觀 관이불천盥而不薦 유부옹약有孚顒若입니다. 관觀의 도道는 관이불천盥而不薦과 유부옹약有孚顒若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관이불천盥而不薦의 관盥(대야 관)은 몸을 씻는다는 말이므로 목욕재계를 통한 몸과 마음의 정화를 의미합니다. 불천不薦(천거할 천)은 그렇게 씻어낸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므로 부동不動의 자세를 말합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여 어떤 외풍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 이것이 관이불천盥而不薦입니다. 유부有孚는 믿음과 신뢰이며, 옹약顒若(공경할 옹)은 공경과 겸손입니다. 관觀의 도道를 주재하는 자에 대한 믿음과 공경입니다. 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부동심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관의 도를 주재하는 자는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관觀은 견見(보다)과는 다른 것입니다. 견은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며, 관은 생각을 갖고 현상의 이면과 사태의 미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동관童觀 소인小人 무구无咎 군자君子 린吝입니다. 아이들에게도 보는 눈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동관童觀입니다. 평범한 사람도 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시각을 갖는 것이 큰 허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인小人은 상관없다无咎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경영해야 할 군자가 이런 동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동관童觀이라도 소인은 괜찮지만 군자는 막히고 옹색해진다吝고 한 것입니다.
세 번째 효사爻辭는 규관闚觀 리여정利女貞입니다. 동관童觀이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면, 규관闚觀(엿볼 규, 엿봄, 훔쳐봄)은 여자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규관은 여자들의 세계관이되,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미 성숙한 여자들조차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경계해야 할 세계관이되,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리利에서 정貞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시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주역』의 진단입니다.
네 번째 효사爻辭는 관아생觀我生 진퇴進退입니다. 관觀의 지혜, 혹은 관의 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관아생觀我生입니다. 관아생觀我生은 자기我生를 본觀다는 말이므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 때 나아가고進 물러날退 바를 능히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관국지광觀國之光 리용빈우왕利用賓于王입니다. 직역하면 나라의 영광國之光을 보는觀 경륜이 있으니 왕으로부터于王 빈객의 예우를 받는다利用賓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흐름과 국가 경영의 도를 알고 국운을 번영케 할 경륜과 능력이 있다면 왕으로부터 큰 대접을 받을 것이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관국觀國을 논한 이 구절은 정치인에게 필요한 관觀의 지혜를 말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관아생觀我生 군자君子 무구无咎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제대로 보아 어떤 상황에서도 진퇴를 결정할 수 있는 통찰력으로 풀이한 관아생觀我生을 거듭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른 군자는 허물이 없으므로无咎 자신의 사사로운 진퇴뿐만 아니라 정치며 경제의 어떤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허물이 없습니다.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관기생觀其生 군자君子 무구无咎입니다. 관아생觀我生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이라면, 관기생觀其生은 타인과 사물에 대한 통찰입니다. 그러한 도리를 깨달은 군자 역시 허물이 없습니다无咎.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