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 중에서 열두 번째가 부否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지비인否之匪人 불리군자정不利君子貞 대왕소래大往小來
발모여拔茅茹 이기휘以其彙 정貞 길吉 형亨
포승包承 소인小人 길吉 대인大人 부否 형亨
포수包羞
유명有命 무구无咎 주疇 리지離祉
휴부休否 대인大人 길吉 기망기망其亡其亡 계우포상繫于苞桑
경부傾否 선부先否 후희後喜
첫 번째 효사爻辭는 부지비인否之匪人 불리군자정不利君子貞 대왕소래大往小來입니다. 부否(아닐 부)는 막히는 것이요, 거부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람人의 일이 아닙니다匪(아닐 비). 점을 치는 사람들은 막힘의 운세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한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주역』이 제시하는 하늘의 도리와 땅의 섭리를 생각해볼 때 이는 시간과 공간의 부조화에서 기인하는 막힘입니다. 그리고 이런 막힘의 운이 닥치게 되면 낭패를 보는 건 소인이 아니라 군자君子입니다. 소인은 제 한 몸의 영달만 지키면 그만이지만, 군자는 더 큰 것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끝까지貞 불리합니다不利. 여기서 말하려는 점은 군자라도 막힌 운을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이든 소인이든 막힘의 운이 닥치면 큰 것大을 잃고往 작은 것小을 취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는 것이 바로 부否의 운세입니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발모여拔茅茹 이기휘以其彙 정貞 길吉 형亨입니다. 발모여拔茅茹와 이기휘以其彙는 띠풀을 뜯어 모아 어려운 때를 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운이 막힐수록 이런 대비는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준비는 끝까지貞 힘차게亨 계속해야 길합니다吉.
세 번째 효사爻辭는 포승包承 소인小人 길吉 대인大人 부否 형亨입니다. 막히는 운세에 이르면 소인小人은 물려받은 것(包承)만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므로 일단 길합니다吉. 포승包承(받들 승)은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이나 유업을 그러한 상태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걸 의미합니다. 현상유지이며, 무사안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인배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안전한 방법입니다. 이에 반해 대인大人은 이를 거부하고 부정하며否, 막힘 자체에 대해 힘찬 기운亨으로 맞섭니다. 실패하더라도 자기의 이상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효사爻辭는 포수包羞입니다. 포승包承은 소인배의 현상유지와 무사안일, 포장된 것包만을 지키려는 태도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羞(부끄러워할 수) 짓이란 뜻입니다.『주역』이 제시하는 건 운세를 피하지 말고 맞서라는 것이며, 망치지 말고 덤비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유명有命 무구无咎 주疇 리지離祉입니다. 운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명命을 받으면有 됩니다. 이때의 유명有命은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바꾸는 명이며, 천명天命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주역』은 명을 받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첫째, 무구无咎입니다. 어렵다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거나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요, 흠 없이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주疇(밭두둑 주)입니다. 주는 밭의 경계가 되는 두둑을 말하기도 하고, 밭의 가지런한 이랑을 말하기도 합니다. 밭의 두둑이나 이랑처럼 가지런하고 질서 있게 생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절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리지離祉입니다. 여기서의 리離는 순종하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지祉는 하늘의 복이라는 말이니, 현재의 어려움과 막힘의 운세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하늘의 복이라고 생각해서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휴부休否 대인大人 길吉 기망기망其亡其亡 계우포상繫于苞桑입니다. 막힘의 운세를 뚫기 위해서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부否의 운세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휴부休否의 단계입니다. 활화산活火山이 휴화산休火山으로 바뀌는 단계를 말합니다. 이 단계가 되면 대인大人의 운세는 마침내 길吉하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운세가 아직 역전된 건 아니라서 기망기망其亡其亡은 이렇게 곧 죽을 것 같고, 금방 망할 것 같은 상황을 표현한 말입니다. 대인의 운이 이 정도로 어렵게 되었다는 건 운세가 휴지기에 들어섰다는 반증입니다.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군자로서의 일을 어떻게든 계속해야 합니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실을 자아내듯이, 다 나왔을 것 같은데 그 작은 누에에서 다시 실이 뽑아져 나오듯이, 그렇게 끊임없이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누에가 기신기신하면서도 끝까지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어가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 계우포상繫于苞桑(맬 계, 쌀 포, 뽕나무 상)입니다.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경부傾否 선부先否 후희後喜입니다. 휴부休否의 단계 다음이 경부傾否의 단계입니다. 막힌 운否을 마침내 뒤집어엎는傾(기울 경) 단계를 말합니다. 정상을 눈앞에 둔 등산객의 입장과 같아서 그 마지막 고비를 경부의 단계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렵기 때문에 선부先否, 즉 여전히 막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정상이 가까운 건 분명하나 모퉁이와 큰 나무에 가려 꼭대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입니다. 어떤 태도로 계속 나가야 할까? 순수하고 깨끗하게无咎, 질서정연하게疇, 역경을 오히려 복이라고 생각하여 순종하면서離祉, 나가야 합니다. 후희後喜, 즉 그런 뒤에는 기쁨이 있게 됩니다. 막힘의 운세가 끝나고 마침내 정상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열린 운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