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說 냉귀지 - 개정판
최병현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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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은 시·소설의 원조 … 낯선 장르 아니다”
『냉귀지』 개정판 낸 최병현 교수
출판사 이해 부족해 고친 부분
원래 의도대로 바로잡아 출간
[중앙일보]2012.11.06 00:12 입력 / 2012.11.06 00:12 

 

 

최병현 교수가 호남대 연구실에서 시설(詩說) 『냉귀지』 개정판을 보여 주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최병현(64) 호남대 영어영문과 교수는 『징비록』『목민심서』 같은 고전을 영역해 유명하지만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젊은 시절 발표했던 『냉귀지』를 다시 손봐 개정판(408쪽)을 냈다. 그는 “30여 년 전, 세월에 강도를 당하고 길가에 쓰러져 절판된 책을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출판사(知와 사랑)가 보고 딱했던지 일으켜 세워 살려 놓았다”고 개정판 서문에 적었다.

 제목으로 冷鬼志·LANGUAGE를 함께 쓴『냉귀지』는 최 교수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1980년 대 초 썼다. 하지만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래 엄두를 못 내다 1988년에야 발표, 그해 제1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책을 찍은 회사가 곧 문을 닫는 바람에 그간 제 빛을 보지 못했다.

 최 교수는 “당시 일부러 틀리게 말을 만들고 시처럼 끊어 쓴 것을 이해가 부족한 출판사가 평범하게 고쳐버리고 일반 소설처럼 늘여서 편집했었는데, 원래의 내 의도대로 바로잡아 책을 다시 냈다”고 말했다.

 『냉귀지』는 형식이 독특하다.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시설(詩說)이다. 최 교수는 “조미료로 맛을 낸 일반 문학의 언어와 달리 하얀 종이 접시 위에 각종 야채·고기·양념 같은 말들을 가득 얹어 놓고 한바탕 비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적인 소설, 소설적인 시로 시와 소설의 원조”라며 “판소리나 서사시를 생각하면 전혀 낯선 장르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내용도 특이하다. 언어(Language·랭귀지)가 주인공이다. 스토리보다는 언어 중심적이다. 이 때문에 해체주의 문학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학 국문학과에서 기호학 쪽 교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냉귀지는 소설 속 일구의 별명이기도 하다. 일구의 아버지는 삼일이고, 일구의 잘나가는 이복동생 이름은 일육. 작품은 일구가 생일을 맞아 하루 동안 기억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로 이뤄졌다. 생일임에도 누구 하나 축하 노래를 불러주지 않자 직접 축가를 지어 부르며 잠자리에 드는 걸로 이야기는 끝난다. 삼일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일구는 60년 4·19 학생혁명과 민주세력, 일육은 61년 5·16 쿠데타와 군사독재세력을 상징하고 있다. 삼일(3+1)은 4(死)이고, 일구(1+9)는 (화투에서 열을 짓고) 0이 돼버린다. 반면 일육(1+6)은 억세게 운이 좋은 7이다.

 최 교수는 소설『헤라클레스의 강물』(양지), 『대한민국 하여가』(知와 사랑) 등도 썼다. 『징비록』『목민심서』에 이어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을 영역하고 있다. 주석을 다는 마지막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영역본 분량이 약 1200쪽, 약 40만 개 단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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