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과 무아

 

 

흔히 상대적인 차원에서 ‘나’와 ‘타인’이란 단어를 편리한 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며 더욱 심오한 진리가 있으리라는 믿음 하에 우리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를 간과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렵고 죄책감에 시달리더라도 우리는 자신을 옹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타인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우리보다 덜 중요하다고 여겨 자신만을 돌보아서도 안 된다. 우리가 타인을 돌보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손해만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사랑함은 물론 타인도 깊이 사랑해야 한다. 나와 타인 사이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진다 하더라도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궁극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보면 나와 타인 사이에 구별이란 없다. 주체와 객체가 하나이고, 위와 아래는 동일한 차원에서 존재하며, 삶과 죽음이 동일한 과정의 일부이므로 나와 타인이 분리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나에 대한 적절한 관계와 타인에 대한 적절한 관계는 자애와 자비라는 동일한 본질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들이 기꺼이 죽음을 무릅쓰고 타인을 도울 때, 우리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이타주의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통합을 목격한다. 한 경찰관이 자신의 위험이나 가족에게 찾아올 불행은 생각지도 않고 벼랑에서 막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구한다. 한 군인이 쓰러진 전우를 구하려고 망설임 없이 빗발치는 총알 사이로 돌진한다. 이때 그 사람은 이런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고 유일한 선택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행동은 무아와 분리가 없는 실재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의식적인 행동으로 옮길 때만 가능하다.
사소한 일이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서로 돕는다. 본 적도 없
고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이 지나가도록 문을 붙잡아주고,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고, 은행원에게 미소를 보내거나 다른 운전자에게 길을 양보한다. 그리 극적이지는 않은 이런 행동도 삶의 근본적인 상호 연관성을 증명한다. 무아의 통찰은 의식 속에 강제로 주입해야 하는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 이미 있어서 그냥 발견하고 키우기만 하면 되는 요소다.
무아에 비추어보면 이타적 행동은 단순히 현명한 행동일 뿐이다. 분리라
는 망상에서 벗어난 깨우친 의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행동에 용감
하다거나 영웅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상장이나 훈장을 수여하는 일은 요점에서 벗어난 이야기다. 우리의 영웅이 자신의 행동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며, 그 순간에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면 그건 거짓 겸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행을 베풀었다고 우쭐해하거나, 자애로운 행동을 하면서 도움을 받는 이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자애로운 행동과 말은 분리와 자아라는 개념에 그 뿌리가 있으며, 도덕적 측면에서 나쁜 일은 아니지만 망상에 근거한 잘못된 생각이다. 자애로운 언행은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화합을 인식하지 않더라도 자애와 자비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은 도움이 된다. 새로운 통찰을 얻으려면 행동을 먼저 바꾸어야만 할 때가 있다. 자애와 자비의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뜻밖에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한다.
자애로운 행동은 우리를 실재로 안내한다. 우리 문화에서 사람들은 냉철한 금융업자나 자본가가 매우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이 현실이
아닌 분리와 영원이라는 망상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습다. 붓다는 진정한 현실주의자다. 자애로움은 곧 깨닫는 마음이다. 자애롭게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의식을 열고 좀 더 현실적으로 무아와 상호 연관된 존재, 즉 분리되지 않은 실재의 본질을 본다.
사랑이 유익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보며 우울해지고 테레사 수녀의 엄격한 신앙심에 반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학생들에게도 침에서 면역을 강화하는 호르몬인 s-IgA가 증가했다(McClelland 1986). 또 다른 실험을 살펴보자. 한 티베트 승려가 실시간으로 뇌의 작용을 보여주는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에 누워 자애 명상을 했는데, 뇌에서 기쁨과 열정을 담당하는 중전두회中前頭回 왼쪽의 활동이 극적으로 증가했다(Barasch 2005). 이처럼 사랑을 수행하면 우리가 행복해진다.
반대로 화와 같은 감정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 화가 나면 우리 몸은 코티솔(부신 피질에서 생기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일종), 에피네프린(부신副腎 호르몬), 노르에피네프린(부신수질副腎髓質 호르몬)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혈관에 내보낸다. 이 호르몬이 혈관 내에 플라크를 형성하고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은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McKay, Rogers, and Mckay 1989). 우리는 때때로 화를 내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나쁜 행동을 했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 화 참기를 꺼리지만, 화내서 당장 고통받는 사람은 바로 우리다. 누군가에게 화를 냄은 스스로 독을 마시고, 그 사람이 고통받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앞서 소개한 마시는 분리된 영역에서 살았다. 그녀 자신을 위해 한 모든 일이 타인에게 반하며 타인을 위해 한 모든 일은 그녀 자신에게 반했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수 없었다. 자신을 자애롭게 대하려고 하면 죄책감에 빠지고 타인을 돌보려고 하면 화가 났다. 상호 연관된 존재에 비추어보면 이런 공멸의 상황이 착각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마시가 그녀 자신을 위해 한 모든 일이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했고 그녀가 타인을 위해 한 모든 일 역시 그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웰빙과 행복을 돌볼 때 그녀는 그녀를 필요로 한 사람들에게 충실할 수 있다. 자신의 행복을 보살피지 못한다면 마시의 분노는 그녀를 필요로 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함과 동시에 그녀는 비분리라는 궁극적인 실재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 실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커다란 행복의 원천이다. 그녀는 우주의 소중한 발현으로서 그녀 자신을 타인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돌보아야 했다. 나와 타인 모두 소중한 발현인 까닭이다.
전 우주가 하나가 되어 나로 발현되었다. 전 우주가 하나가 되어 타인으로
발현되었다. 이것들은 분리할 수 없는 실재들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애
로운 행동은 전 우주에 영향을 끼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