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가질 수 있나?

 

 

『장자莊子』에는 순임금이 대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도道를 가질 수 있나?”

대신이 말했습니다.

“자신의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소유할 수 없으며, 이렇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도를 소유하다니요? 자신이 도 안에 있고, 도는 자신 안에 있으니 도를 소유 한다는 생각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몸은 기의 변화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이는 단지 기가 변화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후손도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천지 사이에서 기의 변화가 낳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도가에서는 어떤 것에 대한 집착도 반대합니다. 그건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의 변화에 순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문이나 후손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다만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질 뿐입니다.

『장자莊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초나라로 향하던 장자가 땅바닥에서 유골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유골을 두드리며 물었습니다.

“어찌 된 일이오? 당신은 생명을 탐하고 양생을 너무 심하게 한 나머지 일찍 죽은 것이오?”

도가에서는 양생을 중시했는데, 양생이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굶어 죽었소? 아니면 얼어 죽었소? 그것도 아니라면 천수를 다하고 죽은 거요?”

장자가 살던 시대는 난세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도한 양생으로 명을 단축하는 것, 나라가 망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사형에 처하는 것, 아사나 동사하는 것, 자연에 순응해 살다가 명이 다해 죽는 것입니다. 앞의 네 가지는 자연사가 아니지만, 자연에 순응해 살다가 명이 다해 죽는 것은 자연사입니다.

유골에게 질문을 마친 장자는 그 유골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잤습니다. 그러자 꿈에 유골이 출현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본래 양지바른 곳에서 잘 지내고 있었소.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바람에 머리가 복잡해졌소. 한참 생각해 보았는데, 내게는 섬겨야 할 왕도 없고 다스려야 할 백성도 없소. 철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오. 다만 여기서 머물며 햇볕이나 자유롭게 쬐다 비가 오면 젖을 뿐이오. 그런데 내게 그런 질문을 하여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오? 지금 난 내 처지에 만족하고 있소.”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장자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생에 대해서 젊은 시절이 집을 떠나는 것이라면 죽음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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