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귀지
최병현 / 문학과비평사 / 198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냉귀지』가 세상에 태어난 이야기

 

 

묘한 것이 인연이라지만 나와 『냉귀지』처럼 묘한 인연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지난 해 고국을 잠시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나왔지만 며칠밖에 머물 수 없는 형편이어서 숨 가쁘게 집안 어른과 친척들을 찾아보고 친구도 만나고 시집간 옛 애인까지 만나다 보니 출국일자가 눈앞에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만사 제쳐놓고 명동에 나가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추억과 감회를 만끽하기로 마음먹었다. 계획대로 미도파와 신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눈요기 배요기를 실컷 하고 몸도 맘도 가득 차 서서히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그때가 아마 늦은 오후가 아니면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또 하루가 이렇게 해서 다 가는구나 아쉽게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백화점을 나서니 갑자기 눈이 맵고 기침이 나지 않는가? 당시 한국은 학생 데모가 극심하고 혼란한 상태였다. 내가 명동을 나간 날은 우연히 6·25였는데 모르면 몰라도 6·25를 방불케 할 만큼 학생과 경찰의 충돌이 치열했었다. 나는 데모를 피하려다가도 한편 구경하고 싶기도 해서 미처 마음을 못 정한 상태로 길을 멈추고 멈추었다가는 또다시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눈물은 범벅이고 기침은 연속이었다. 손수건으로 두 눈을 거의 붕대처럼 감고 가는데, 갑자기 무언가 무거운 것이 내가 들고 있던 쇼핑백 속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동시에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잡아라!” 하는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기에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사복 차림의 경찰들이 누군가를 다급하게 뒤쫓고 있었다. 쫓기는 사람은 모르면 몰라도 학생일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건대 이 사건이 내가 『냉귀지』와 만나게 된 원인이며 어쩌면 『냉귀지』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동기이자 최초의 출생신고라고 할 수 있다. 『냉귀지』의 저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할지는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도 그의 신원이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이상, 『냉귀지』는 원고지 핏덩어리로 내 쇼핑백에 떨어졌을 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물건을 주우면 주인을 찾아주거나 못 찾으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데모가 끝나고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부근을 배회하면서 떨어진 물건의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만 가고 밤만 깊어갈 뿐 아무도 나타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숨었단 말인가, 잡혔단 말인가? 박종철은 이미 죽었으니 그가 그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또 하나의 박종철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발버둥치고 있단 말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무작정 기다릴 수만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인근 다방에 들어가 도대체 내 가방 속에 떨어진 물건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뜻밖에도 마치 급히 도망이라도 치듯 어지럽게 흘겨 쓴 원고뭉치가 아닌가? 그리고 첫 장에는 “냉귀지”라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리를 해보았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별로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지 않았다. 경찰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경찰이 수상하게 찾는 것이니 오히려 숨기고 보호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금 내가 불법을 범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불안해지기조차 했다. 과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또, 주운 것은 주운 자 맘대로라지만 만일 주운 것이 아니고 맡겼다면 『냉귀지』의 신원과 소재를 경찰에 알리는 것은 주인에 대한 배반이 아니겠는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나가는 행인의 보따리 속에 집어던져야 했을 때 어찌 그의 간절한 기도와 신뢰를 저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애기 같은 핏덩어리 원고, 내 자식으로라도 키워야 될 것 아닌가?

 

작품이 작가를 찾습니다
다음날 신문사를 찾아갔다. “작품이 작가를 찾아요?” 광고부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만 나에게 물었다. 나는 또 난처해졌다. 사실대로 설명하자면 너무 복잡하고 믿지도 않을 것만 같고 의심스런 나머지 자칫하면 신문에 안 실어 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또 말을 잘못했다간 경찰서에 신고할지도 몰랐다.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수십 대의 전화기들이 눈에 띄면서 일제히 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럴 사정이 있노라고 얼버무리고 실어만 주신다면 돈 내고도 고맙겠다고 사정했다. 직원의 갸우뚱했던 고개가 마지못해 끄덕여졌다.
미국으로 출발하려면 약 사흘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 신문광고에는 아무런 반응조차 없지 않은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어디서 전화연락 없었느냐고 초조하게 물었다. 서울 시민들은 데모기사만 읽고 광고 같은 것은 안 읽는단 말인가? 나중에는 혹시 광고의 어딘가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문사에 전화해서 광고를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명동에서 고의적인 실수로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린 분을 찾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광고부 직원이 “아니 지금 수수께끼를 내시는 겁니까? 아니면, 광고를 내시는 겁니까? 고의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가라니요. 도대체 무슨 물건이기에 그렇게 밝히기를 꺼려 하십니까? 주인을 못 찾으면 경찰서에 갖다 주면 그만이지 돈 내고 광고까지 하시는 분은 광고사상 처음 봤습니다.” 말인즉 옳았으나 남의 속을 모르는 말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명동에서 원고뭉치를 읽어버린 사람을 찾는다고?”
소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사람들은 광고도 안 읽나? 학생들은 뭘 하기에 광고 읽을 시간도 없는가? 책이라도 읽는단 말인가? 결국 나는 『냉귀지』의 저자를 찾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뭔가 잃어버린 기분으로. 찾지 못한 기분은 잃어버린 기분이니까.

 

출판사의 이유
미국에 돌아온 나는 『냉귀지』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냉귀지』는 내가 일을 갔다 돌아오면 마치 호소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미국에 왔느냐고, 한국말이 영어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푸념과 불평을 토하는 것만 같았다. 죽어도 한국에서 죽고 썩어도 한국에서 썩고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한국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싶다고, 그러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문득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즉 『냉귀지』를 출판하면 작가를 찾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다음날 나는 은행에 가서 10전짜리 은전을 잔뜩 바꿔가지고 시립도서관에 있는 복사기로 『냉귀지』의 사본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한국에 있는 유명 출판사들에게 간단한 편지와 더불어 『냉귀지』를 우송했다. 『냉귀지』를 우체국에 가지고 가 한국으로 부치던 날 나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냉귀지』가 운명적으로 나를 만난 것처럼 또한 운명적으로 자기의 주인과 극적인 상봉을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한국으로부터 『냉귀지』에 대한 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 우체통이 비어 있으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나는 도저히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한국에 있는 출판사에다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용건을 말했더니, 전화를 받는 사람마다 자기는 잘 모르겠으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자꾸만 다른 사람을 바꿔주었다. 참다 못해 전화를 끊을까 말까 포기하려는 찰나 약간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이라고요?” “아 그 제목이 뭐더라, 이상한 원고 말인가요? 그렇죠, 『냉귀지』죠, 이제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나는 잘 알았노라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왕 내친 김에 또 다른 출판사에다가 전화를 걸었다. 다른 출판사 역시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예술성은 몰라도 상품성은, 글쎄요, 정치성은 강하더구만, 글쎄요, 적어도 제 출판 경험에 의하면 이런 작품은, 물론 힘들게 쓰셨겠지만,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나.” 『냉귀지』는 내 작품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은 몹시 뜻밖이라는 듯이 “그러면 부탁을 받으셨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그래서 그것 역시 아니고 사실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주운 거나 다름없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생에게 솔직히 말씀드리겠는데, 임자도 없는 원고를 출판하려고 국제적으로 애쓰시느니 차라리 처음 주웠던 자리에다 다시 버리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회가 저질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상한 것은 안 먹히고 안 팔립니다. 『냉귀지』가 아니고 『삼국지』라면 모르지만, 그게 고질이죠. 『냉귀지』 속에 있는 말마따나 저질은 고질이죠. 출판사는 독자적獨白的이어야 하는데 독자적讀者的이죠. 그래서 출판과 노름판이 다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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