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이 960억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그들의 유골이 아닐까 하고 생각됩니다. 사람은 죽어서 티끌로 돌아갑니다. 돌아간다는 말은 티끌로 왔기 때문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67억 인구도 조만간 티끌이 될 것이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를 밟고 설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내세를 믿습니다. 지구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대로 곧 다음의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구상에서의 삶의 태도에 따라 바람직한 내세가 정해진다고 믿습니다. 종교는 내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생로병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합니다. 게다가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임사체험은 죽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거의 죽을 지경에 다 달았던 경험을 말합니다. 영어로 near death experience라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죽음을 경험한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의 말은 다양하고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건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노자老子는 출생입사出生入死라는 매우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그는 생명이 태어나 죽음을 향해 간다는 뜻으로 이 말을 했습니다. 출생입사는 나옴이 삶이요 들어감이 죽음이라는 뜻입니다. 나왔다가 들어가기까지의 짧은 기간이 인생입니다. 사람들 가운데 30%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대로 장수하고, 30%는 단명하며, 30%는 장수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 노력, 즉 양생養生을 즐깁니다. 그렇지만 양생도 지나치면 영양 과잉으로 죽음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노자의 말에 따르면 위의 90%를 제외한 나머지 10%가 생명이 태어나 죽음을 향해 간다는 뜻을 이해합니다.

장자는 태어나는 것을 거절할 수도, 죽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비롯한 자연현상은 인간의 의지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자는 기본적으로 생명을 기의 변화로 간주했습니다.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장자는 생명을 임대의 관점, 본래 자기 것이 아니라 빌려서 쓰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인생을 일종의 과정으로 보고 사는 동안 무엇을 할지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장자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지天地는 나에게 신체를 빌려주고, 삶으로 고통을 준다. 노년에는 조금 편안하게 해주다가 결국 죽음이라는 영원한 휴식을 준다.” 장자는 삶과 죽음을 언급할 때마다 생명이 짧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흰 말이 매우 빨리 달려가는 것에 비유하여 흰 말이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듯이 눈 깜박할 사이, 즉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극은 벽 모퉁이에 난 작은 구멍을 말합니다. 이 구멍으로 흰 말이 달리는 모습을 본다면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전에 어느 노인분이 제게 세월이란 50대에는 50마일, 60대에는 60마일, 70대에는 70마일로 달린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노자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음이 그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이기다고 하는 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 말합니다. 내세를 믿는 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내세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죽음을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깨어 있는 것이 됩니다.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혹은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잠들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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