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올바른 방법으로 벌어야 한다

 

 

가난하더라도 도를 즐기는 편안한 생활을 안빈낙도安貧라고 합니다. 이는 공자孔子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정신 중 하나로 공자의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가 안빈낙도를 실천했습니다. 안회는 너무도 청빈하게 살았기 때문에 쌀뒤주가 항상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스승 공자가 가르쳐 준 도를 즐겼다고 합니다. 평생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외부의 환경을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주어진 환경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성인聖人의 도를 실천했습니다.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나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던 안회는 공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가에서는 그를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받들어 안자顔子라고 높여 부릅니다.
장자莊子에는 위나라 공자 모가 담자談子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비록 몸은 속세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왕실의 부귀영화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네. 간단히 말해서 몸은 비록 민간에 나와 있지만 마음만은 늘 궁궐에 있다는 뜻일세. 지금은 은거 중이지만 내 공자의 신분이 아닌가. 전에 왕실에서 누렸던 부귀영화가 그리우니 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그러자 담자가 말했습니다.

목숨을 소중히 여기시면 재물이나 녹봉 따위는 잊게 되실 겁니다.”

그렇지만 공자 모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했는데도 포기가 안 되는데 괜히 무리하면 더 크게 다치십니다. 이중으로 상처를 입으시면 목숨마저 부지하기 힘듭니다.”

담자는 안빈낙도의 생활을 즐길 자신이 없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많은 돈을 버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돈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벌었다면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날 부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건 그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고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장자는 그렇게 생각 하지 않았습니다. 장자에 이와 관련된 상당히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장자의 이웃 중에 조상曺商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송나라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조상이 송나라를 대표해서 진나라에 특사로 파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집을 나설 때는 분명히 마차 몇 대가 갔을 뿐이었는데 진왕의 마음에 들었는지 돌아올 때는 무려 마차 백 대가 함께 왔습니다. 우쭐해진 조상이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자네처럼 피골이 상접해서는 누렇게 뜬 얼굴로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에서 짚신이나 삼으며 살라고 한다면 난 절대로 그렇게 못하네. 날 보게. 송나라 특사로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 마차 백 대를 벌었으니 이게 바로 내 능력 아니겠는가.”

조상은 장자 앞에서 이렇게 오만함을 드러냈습니다. 장자가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진왕이 병이 들어 의사를 모셔왔는데 종기를 치료해줘서 마차 한 대를 주었다고 하더군. 그리고 치질을 치료해준 의사에게는 마차 다섯 대를 주었다고 하네. 한 마디로 치료 부위가 천할수록 상으로 받는 마차의 대수가 늘어난다는 뜻이지. 자네가 마차 백 대를 하사받았으니 치료해준 병이 치질 정도 되나? 정말 추잡하군. 어서 여기를 떠나게.”

조상은 장자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왔지만 본전도 찾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유래된 성어가 연옹지치吮癰舐痔입니. 연옹지치는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 앓는 밑을 핥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부귀를 얻기 위해 부끄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부자들 가운데는 연옹지치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장자가 한 말이 자신들에게 한 것으로 이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반면에 조상과는 매우 대조적인 도양설屠羊說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직업이나 특징을 집어넣어 이름을 지었는데, 도양설은 이름에 도양屠羊이라는 한자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양을 잡는 일을 업으로 한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초나라 소왕 때 오나라가 초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초나라는 패했고 소왕은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갈 때 몇몇 대신과 백성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소왕은 함께 도망갔던 사람들과 초나라로 돌아왔습니다. 도양설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소왕은 귀국한 후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한 명씩 일일이 상을 주고 마지막으로 도양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소왕이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 피난을 갔다 다시 돌아왔기에 상을 내리노라.”

그러자 도양설이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왕은 국외로 도망가 왕위를 잃으셨고 저는 제 가게를 잃었습니다. 왕이 돌아와 왕위를 되찾으셨고 저는 제 가게를 되찾았습니다. 제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데 무슨 상을 내리신다는 말씀입니까?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가 거절하자 기분이 상한 소왕은 억지로라도 그에게 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양설은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백성입니다. 왕이 나라를 잃으신 건 저의 책임이 아니므로 제게 벌을 내리신다 해도 어떠한 벌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왕이 다시 왕위를 찾으신 것도 저의 공로가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그 어떤 상도 받을 수 없습니다.”

도양설이 두 번이나 거절하자 소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 상을 받기를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직접 와서 자신을 접견하라고 했습니다. 도양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나라 법에 의하면 큰 공을 세운 자만이 왕을 접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한낱 양을 잡는 백정으로 용감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합니다. 오나라 군대가 도읍을 공격해 왔을 때도 두려운 마음에 왕을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그런 제가 무슨 자격으로 왕을 알현하겠습니까? 왕이 아무런 공도 없는 놈을 불러다 만난다는 소리를 세상 사람들이 듣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일 따름입니다.”

비록 도양설이 양을 잡는 백정이지만 조리 있게 말하는 걸 보고 소왕은 삼공三公에 임명하고자 했습니다. 삼공은 당시 초나라 최고의 관직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양설은 거절했습니다.

삼공의 작위가 매우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양이나 잡는 제 처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위치입니다. 그리고 녹봉도 제가 버는 것의 수만 배는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공도 없이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며 왕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도양설이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분수를 알고 처지에 만족할 줄 알았습니다. 옛말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재물 대문에 죽고 새는 모이 때문에 죽는다.” 장자는 지나치게 많은 돈이 오히려 생활하는 데 부담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자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중간일 때가 가장 이상적이다. 넘치는 건 오히려 해가 된다. 세상 만물이 다 그러하지만 돈이 특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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