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손숙오孫叔敖 이야기
도가道家의 사상가 장자莊子는 춘추시대 5인의 패자覇者를 일컫는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로 꼽히는 장왕莊王(기원전 613~591 재위)을 도와 초楚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손숙오孫叔敖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고통과 기쁨을 초월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손숙오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중국 고대의 변혁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재상으로 재상의 자리에 세 차례나 올랐다가 물러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는 우맹의관優孟衣冠이란 고사가 전해옵니다. '우맹이 의관을 차려 입다'라는 뜻의 우맹의관은 그럴 듯하게 꾸며서 진짜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 또는 예술작품에서 남의 것을 모방하여 독창성과 예술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경우, 배우가 등장하여 어떤 일을 풍자하는 경우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됩니다. 우맹의관을 의관우맹衣冠優孟이라고도 하며 초나라의 재상 손숙오와 관련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악인樂人 우맹의 고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맹優孟이란 사람은 풍자하는 말로 사람들을 잘 웃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재상 손숙오는 우맹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그에게 잘 대해주었습니다. 손숙오는 병석에 누워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너는 틀림없지 빈곤해질 터이니, 우맹을 찾아가 '제가 손숙오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거라" 하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의 아들은 과연 곤궁해져서 생계수단으로 땔감나무를 팔았습니다. 아들은 우맹을 찾아가 "저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실 때 빈곤해지면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우맹은 손숙오처럼 의관을 갖추고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기 시작하여 1년쯤 지났을 때에는 손숙오와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우맹은 장왕이 베푼 주연에 참석하여 만수무강을 축원했습니다. 장왕은 크게 놀라며 손숙오가 환생한 것으로 여기고 우맹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우맹은 아내와 상의한 뒤 사흘 뒤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사흘 뒤 우맹은 장왕을 알현하고 "아내가 초나라 재상은 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했습니다. 손숙오 같은 분은 충성을 다하고 청렴하게 생활하며 왕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도록 보좌했지만, 그의 아들은 송곳을 꽂을 만한 땅도 없이 가난하게 살면서 땔감나무를 팔아 연명하고 있습니다. 손숙오처럼 되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는 편이 낫다고 생각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장왕은 잘못을 사과하며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침구寢丘 땅의 400호를 봉토로 주었다고 합니다.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청렴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숙오는 세 차례나 재상에 올랐지만,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고 좋아하는 기색을 보인다든가, 물러난다고 언짢은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었습니다.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올랐을 때 기쁘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숙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 재상이 됐다는 이유로 기뻐해야 하는가? 재상은 단지 관직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세. 순전히 나 때문에 기쁘다면 그것은 재상의 자리와 관계가 없네. 나의 고통과 기쁨은 바깥세상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네.” 이러한 손숙오의 의연함이 부러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