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가 이해한 요임금

 

 

 

고대 중국의 오제五帝 중 하나인 요임금은 전설의 임금입니다.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에 의하면 고대 중국은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고, 평화스러웠으며, 농사가 잘되어 백성이 임금의 존재를 모를 만큼 요임금이 선정을 베풀었고, 그 뒤 중국 역대 제왕들의 본보기가 될 만큼 성군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요임금과 다음의 순임금 시대는 태평성대로 중국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임금은 어질기가 하늘과 같고 지혜가 산과 같아서 사람들이 가까이 접할 경우 그의 성품이 인자하기가 태양을 우러러봄과 같았다고 합니다.

요임금은 평양부平陽府 산서성山西省에 도읍을 정하고 자신이 거주할 궁전 지붕을 띠로 덮으면서 그 끝을 가지런히 자르지 않았고, 궁전의 층계를 흙을 만들었는데 세층밖에 되지 않았는데, 과거 천자들이 나무나 돌로 만들어 아홉층으로 한 것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모습입니다. 말이 궁전이지 허름한 초가와 같았으며 기둥과 서까래는 손수 산에서 잘라온 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나물국과 거친 밥을 먹었으며, 옷이라고 해야 허름한 삼베옷 하나였고, 추운 날에는 사슴 가죽을 걸쳤습니다. 임금이 이처럼 소박하게 살자 백성은 문지기 같은 말단 관리도 그보다 낫게 산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요임금은 총명하고 인정이 많았고 근검과 절약이 몸에 배었으며, 하늘의 뜻을 받들고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정치를 행했으므로 백성 모두가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백성 중에 끼니를 잇지 못하는 자나 옷을 입지 못하는 자, 그리고 잘못을 범한 자가 있으면 그는 입버릇처럼 모두 내 탓이지,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으니하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요임금은 백성의 모든 잘못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기 때문에 그가 통치하던 1백 년 동안 한발과 홍수가 수없이 닥쳤어도 그를 원망하는 자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자莊子에 요임금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그가 요임금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게 해줍니다. 한 번은 요임금이 지방에 시찰을 나갔고, 그가 화지역에 당도했을 때 그 지역 관리가 말했습니다.

성인이 오셨으니 제가 축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하고 말한 뒤 첫째로 장수를 축원하려 하자 요임금은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둘째로 부유해지기를 축원하려 하자 이것도 거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많이 낳기를 축원하려 하자 이마저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 관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임금님께 보통사람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장수와 부, 그리고 많은 아들을 기원해준다는데, 왜 싫다고 하시는 겁니까?”

요임금이 말했습니다. “아들이 많으면 나중에 다 키워서 무슨 일을 시키겠는가?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근심도 는다네. 돈도 마찬가지라네. 어디서 듣고 자꾸 달라고 찾아올 터이니 많을수록 골치만 아프지. 장수 또한 마찬가지일세. 너무 오래 살면 고역이 아니겠는가.”

기분이 상한 관리가 말했습니다. “저는 임금님께서 성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평범한 군자일 뿐이군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할 일을 정해준다고 하니 아들이 많다면 그냥 하늘이 정한 일을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려서부터 학문을 열심히 갈고 닦아 사회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했는데 적합한 일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분명 하늘이 모두에게 각자 알맞은 자리를 마련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많으면 각자의 소질에 맞는 일을 찾게 하면 되지요. 또 돈이 많으면 모두와 나눠 쓰면 되지 않습니까?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수는 왜 싫다는 겁니까? 태평성세에 오래 살면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으니 좋고, 혼란한 때는 은거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1천 년 정도 은거하다가 지겨워지면 비조를 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1천 년 정도 살면 행동의 제약도 없어지고 초탈한 상태일 터인데 무엇이 고역이란 말씀입니까?”

그러나 요임금의 생각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생명을 유지하는 노인으로 장수하는 건 분명 고역입니다. 장수와 부, 아들이 많은 건 하나같이 모두 번뇌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장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습니다. 그에게는 고통과 기쁨이 일념지간一念之間의 차이입니다. 일념지간은 본래 불교의 용어로 마음을 지칭합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에 고통도 기쁨도 없다고 말합니다. 번뇌하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고통이고 평온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고통도 기쁨도 없습니다. 새옹지마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통과 기쁨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장자는 보통사람을 상징한 관리와 요임금을 비교하여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고통과 기쁨이 도인인 요임금에게는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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