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독제로서의 역할

 

마음챙김의 명료함과 고요함은 일반적으로 고통스러운 정서 상태를 치유할 수 있다. 마음챙김이 우리의 뒤흔드는 감정을 고요하게 해준다. 마음챙김으로 그 감정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길을 점차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에는 좀 더 구체적인 전략이 있다.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이용하는 마음챙김과 더불어 더욱 구체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해독제로서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증오나 분노를 느낄 때, 사랑과 자비가 해독제 작용을 할 수 있다. 증오나 분노를 없애려면 우리를 화나게 한 사람도 우리처럼 고통을 피하고 행복해지려고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은 단지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그 행동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매우 왜곡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이 통찰의 이면에는 반드시 어떤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실을 충분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알게 되면 우리의 화가 누그러질 것이다.
“적의 비사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한 슬픔과 고통을 보게 된다”고 미국의 시인 롱펠로(2000, 797)는 적었다. 살아 있다면 언제라도 경이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잘 이용하면 자비를 배울 수 있다. 우리는 고통받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결국은 지혜롭지 못한 언행을 하거나 위험한 일을 하고 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이런 성향을 매우 명료하게 알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데 적용될 수 있다. 조금만 훈련하면 된다.
우리는 무상에 대한 가르침으로 화를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면 우리와 그 사람이 죽고 없을 미래를 상상해보라. 나처럼 그 사람도 결국 뼈나 흙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영원의 렌즈를 통해 화가 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실을 분명하고 깊이 있게 인식한다면 우리의 화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슬픈 감정이 생긴다면 우리 삶의 좋은 것들을 상기하여 해독제를 준비하라. 현재 상황에서 좋은 것들을 마음에 떠올리고, 그것들에 집중하여 깊이 생각하라.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 속에 다툼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내게는 슬픔을 느낄 자격이 없어.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 가져본 적조차 없는 이렇게 좋은 것들 모두를 내가 누리고 있으니 말야” 하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단지 슬픔에 주목하고, 마음을 챙겨 그 슬픔을 감싸 안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키우면 된다. 슬픔 그리고 고통과 더불어 행복이나 감사의 에너지를 키우고 그 행복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불행한 감정을 돌보도록 하면 된다.
우리가 아주 슬플 때 소외되고 분리되어 홀로 슬픔에 잠겨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내 고통과 내가 견디고 있는 상황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겪어보지 못했을 것처럼 느낀다. 그런 감정은 망상이지만 어떤 때는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그럴 때는 우리와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 모두에게 자애로움의 빛을 보낸다고 상상하라. 유산한 적이 있는 여인은 같은 일을 겪은 모든 여인에게 자애로운 빛을 보낼 수 있다. 이혼한 사람은 같은 이유로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빛을 보낼 수 있다. 심지어 특별한 이유 없이 슬픔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이유 없이 슬픔에 잠긴 모든 사람에게 자애로움의 빛을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곧바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이제는 슬픔이 아직 남아 있더라도 그 슬픔의 성격은 이미 전과 다르다. 그 슬픔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분리하는 대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투가 날 때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필요할까? 우리의 친구가 더 좋은 차나 집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아니면 우리가 관리자인데 우리의 동료가 표창을 받거나 큰 액수의 보조금을 받았다고 해보자. 또는 우리가 작가인데 친구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도 사람이기에 “왜 내가 아니지? 왜 그런 좋은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 걸까?” 하는 감정이 들 것이다. 마음챙김은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이것은 부러움이다,” “부러움이란 감정이 여기 있다” 하고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단 부러움을 인식하고 나면, 이런 감정에 빠지는 것이 고통스러우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런 감정은 당연하고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런 생각은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이 사람의 좋은 일이 내게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지, 이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지 깊이 생각해보자. 또한 이 사람의 어려움을 알게 되면 좋은 일이 이 사람에게 생겼다는 것은 정말로 반가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무아의 연습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기는 좋은 일이 내게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결국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내게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피를 당하거나 당황하게 될 때 최고의 나, 즉 우리의 좋은 성품과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를 떠올려라. 우리 내면의 불성을 떠올려라. 실망을 느낄 때는 우리 삶의 좋은 것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이끌어내라. 고통스런 감정이 일어날 때는 그 감정과 다툴 필요가 없다. 대신 무엇이 해독제가 될지 찾아보고 지혜와 명료함으로 그 해독제를 불러와 그 해독제가 스스로 고통을 치료하도록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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