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한 인식
고통스러운 감정의 에너지를 체험할 때 우리는 내면에 있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불러일으켜 이런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이런 두 번째 종류의 에너지가 마음챙김의 에너지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고 단순한 인식을 연습해보자. “이건 뭐지? 내 몸, 내 마음속에서 내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지?”라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관심과 친근한 호기심에 대한 느낌을 불러일으켜 보자. 일종의 떠오르는 생각에 주의를 기울여라. 우리의 현재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라. 이런 생각과 감정에 연관된 신체의 감관sensations에 주의를 기울여라. 심호흡한다. 감관에 기꺼이 함께 하는 것을 연습해보자. 우리의 의식이 고요하고 맑은 산의 호수와도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라. 우리는 생각과 감정이 그 밖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잠깐 나타나, 잠깐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것들이 불쾌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런 생각, 감정과 함께 심호흡하면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음의 문구를 이용해서 그것들에 집중하라.
•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는 여기에 슬픈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
•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는 화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안다.
•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는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나는 내가 긴장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관찰들이 어떻게 문자화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에게 그냥 “나 화났어!”라거나 “나는 슬프다!” 또는 “절망이야!” 하는 식으로 말해서는 단순한 인식을 수행할 수 없다. “나 화났어” 하고 말하면 우리는 자신을 그 감정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 속에 녹아들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화뿐인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화 자체가 된다. 그러나 “여기 화가 있다” 하고 자신에게 말하면 자유의 구역을 열게 되고 우리와 그 감정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화가 몸과 마음속에 일종의 에너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또 우리가 화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릴 기회가 생긴다. 우리는 화가 영구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화가 난 당시에는 화로 가득 차 있겠지
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화 자체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건 최악이야!” 하고 말하는 대신에 “나는 이것이 최악이라 생각하고 있어” 하고 말하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이건 최악이야” 하고 말하면 그것이 궁극적인 진실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챙겨 일어나는 일을 살피고, “나는 이것이 최악이라 생각하고 있어” 하고 자신에게 말하면, 이것은 단지 하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사실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중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우리가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에즈라 베이다 선사는 고통스러운 생각이 일어날 때, 참을 수 없다고 믿게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말함으로써 그것에 주목하라고 제안한다. 이 단순한 단어 ‘믿게 되는’은 흥미롭게도 효과가 매우 좋다. 우리가 그 생각을 믿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그 이면에 그것을 믿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생각과 싸움을 벌여 다시 자신을 전쟁터에 보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자신과 싸움을 벌이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믿는 나와 믿지 않는 나 사이에서 다투게 되어 평화가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베이다는 ‘믿게 되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그 감정과 다투지 말고, 그 감정이 흘러가게 버려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