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의 인학사상에서 인애는 인을 본으로 한다. 맹자는 인학을 발전시켜 인정사상을 주창했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버이를 잘 섬기는 것이 인이며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의다.
親親, 仁也; 敬長, 義也.
어진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고, 예가 있는 사람은 남을 공경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늘 남에게 사랑을 받으며, 남을 공경하는 자는 늘 남에게 공경을 받는다.
仁者愛人 有禮者敬人. 愛人者, 人恒愛之. 敬人者, 人恒敬之.
어진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고 인자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한다.
仁者以其所愛, 及其所不愛. 不仁者以其所不愛, 及其所愛.
인은 전통 유학에서 중요한 내용이다. 후한의 허신許慎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인은 친이며, 사람 인 변에 두 이 자를 결합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인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며 당연히 인간과 인간이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관계설도 포함하고 있다. 『논어』 「안연顔淵」에서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라고 한 것처럼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유학의 인애는 “다섯 가지 관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
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하는 도가 잘 지켜져야 한다. 이 관계들이 어긋나고 조정과 종묘, 사람과 귀신이 질서를 잃으면 이것이야말로 난세라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이러한 일은 없었다.” 공자는 인학사상을 수립하여 사람이 수양(修身)을 기초로 가정을 바르게 세우고(齊家) 나라를 다스리며(治國) 천하를 통일(平天下)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랑은 가장‘ 신비한 도’
기독교사상의 핵심은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이다. 하느님이 먼저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기에 인간은 사랑으로 하느님에게 보답해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하느님을 믿고 소망해야 한다. 즉 믿음, 소망, 사랑을 하나로 실현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사랑이 제일이자 근본이다.
성경에서는 사랑을 가장 ‘신비한 도’라고 말한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린도전서」 13:1~2).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3:13).


 

기독교는 남을 대할 때 사랑을 최우선에 두라고 한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사랑이며 가장 기본 계명은 다음과 같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복음」 22:37~40).

가장 높은 신인 하느님은 『구약성경』에서 질투와 잔혹한 야훼의 형상이었지만 예수는 야훼의 위대한 정신을 사랑이란 한 단어로 녹여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감동하여 그 사랑을 남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는 것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복음」 7:12)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황금률로 유학자가 주장한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한다”와 상당히 유사하다.
기독교는 남을 사랑하듯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인 자기애를 긍정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이익을 따지는 이기심은 보편적인 것이자 생존본능이다. 신학자들은 도덕적 완벽함으로 인간의 칠정육욕9 을 조절할 수 있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만 그 사랑을 확장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형편을 헤아리고 사랑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를 사랑하는 공적인 사랑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 신학과 유학은 서로 다른 문화 체계로, 전자는 신성에 입각해서 이론을 세웠고 후자는 이성에 기초해서 이론을 세웠다. 둘은 각자 자신의 길을 걸었지만 ‘사람을 사랑한다’는 동일한 목적지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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