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여진 성경

 

하느님은 자기 백성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의 구주가 되었다. 언약의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즉 하느님의 독생자이다. 성경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성경이 하느님의 계시이자 은혜와 구속의 계시이며 오류가 없는 확실한 것임을 증명한다. 성경에는 우주의 시작과 완성, 인류의 기원과 끝, 생명의 참뜻, 인생의 원칙과 의의 등의 내용과 계명이 담겨 있다. 크리스천에게 성경은 신앙과 삶의 근거이자 진리와 도덕의 시작이며 끝이다. 또한 율법과 규율의 기초다. 성경은 기독교의 영혼이다. 서양의 주류 종교가 기독교이므로 서양문명을 이해하려면 성경을 이해해야만 한다. 세계1 0억 이상의 사람들이 성경을 정신적 삶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 또한 180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가장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신학자들은 성경이 시대, 직업, 신분, 저작 환경이 모두 다른 40여 명의 저자들이 쓴 책이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맨 처음의 다섯 권(모세 5경)을 쓴 것으로 전해지는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지도자였고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군사 지도자였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솔로몬은 두 번째 왕이었다. 다니엘은 유대인으로 이국 바빌로니아의 재상이었으며, 바울은 사도로 불리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교의 율법학자였다.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누가는 의사, 베드로와 요한은 어부, 아모스는 양치기, 마태는 세리였다.
『신약성경』의 각 권은 따로 쓰였다가 후세에 편집되어 하나로 묶였다. 그러나 정작 저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크리스천은6 6권이나 되는 책들이 저자와 풍격이 제각각임에도 앞뒤로 호응하며 온전히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것을 신기하게 받아들인다. 크리스천은 성령이 『신약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했기 때문에 신비롭게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진정한 저자가 하느님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에서 모순되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신학자들은 『구약성경』의 배후에는 생활이 어려워 도처를 떠돌면서 죽어간 유대인의 피눈물 나는 역사가 있다고 말한다. 비이성적 색채는 주로 『구약성경』에서 나타난다. 기독교는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성주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울과 베드로가 교회를 세울 때 신성은 『구약성경』에서처럼 억지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반성을 통해 신학적 논리로 증명해야 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는 인성과 이성을 존중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예수는 서서히 신격화되었다. 원래 가난한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제자와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그의 신분을 이스라엘 왕 다윗의 자손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또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이고 성령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으로 믿는다. 예수는 신과 인간이 결합하여 낳은 아들로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다. 예수가 왕권을 가졌던 다윗의 자손이든, 신권을 지닌 하느님의 아들이든 최고 통치자는 될 수 있겠지만 자체의 모순을 피할 수는 없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는 노릇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신약성경』은 더 나아가 새로운 언약을 강조한다. 즉 유일신 하느님을 믿기만 하면 그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죄 사함을 받고 죽은 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편찬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교도였던 콘스탄티누스 1세였다. 그는 평생 이교도로 살다가 임종 때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가 생존했을 때 로마의 공식 종교는 미트라교였다. 로마에서 기독교와 이교도의 충돌은 점점 더 격화되어 로마제국을 둘로 나누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25년에 로마제국의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기로 결심했다. 미트라교 신도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미트라교의 상징부호, 절기, 의식을 기독교의 것들과 결합하여 양측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혼합 종교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독교의 전통을 강화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다. 부활제의 시기, 주교의 책무와 성례 관리, 예수의 신성 문제 등 기독교 내에서 논쟁되던 문제들을 토론을 거쳐 투표로 결의했다. 예수의 신성과 관련해서는 “예수는 신의 아들이다”라는 교리가 투표로 통과되었다. 이는 로마제국의 정치와 종교 권력자가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한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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