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서 벗어나기

 

얻어야 할 가치나 존재해야 할 가치란 전혀 없다.
아찬 붓다다사Achaan Buddhadasa(1906~93)

 

마침내 시간이 나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옥외 테라스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의자에 앉아 해방감을 느끼는 가운데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드디어! 우리는 자유다. 마침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다. 의자와 테라스, 바깥 풍경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갑자기 어떤 에너지가 내부에서 일어나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마당을 쓸거나 정원을 가꾸거나 아니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작은 일거리를 만들고 다시 바쁘게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는 우리가 잠시 명상을 하려 한다고 생각해보자. 방석 위에 앉아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잠시 호흡을 즐기는데 별안간 동일한 유형의 에너지가 나타난다. 마음은 옆길로 새고 표류하지만,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갑자기 가려운 곳도 생기고 몸이 쑤신다. 우리는 꿈틀대고, 움직이고, 자세를 바로잡아 보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움직여야 할 것만 같다. 문득 전화할 데가 생각난다. 조금 있다가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을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가 없다. 떨쳐버리려고 할수록 이 생각이 더욱 커질 뿐이다. “오, 전화만 하고 바로 돌아와 명상해야지” 하고 혼잣말을 하며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전화를 걸면서 다른 생각과 근심이 생겨나서 전
화하기 전보다 더 마음이 편치 않다. 몸을 꿈틀거리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명상을 포기하고 어떤 일이라도 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습관 에너지vāsāna(습기習氣)에 빠져 시달린 것이다. 우리는 습관 에너지에 휘둘려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원인은 습관 에너지에 있다. 쉴 새 없이 활동하는 습관은 별로 해롭지 않아 보이지만, 때론 그렇지가 않다. 되기와 하기의 파괴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밀어넣는 습관은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적이다. 이런 습관 에너지를 버리는 방법을 배우면 그 에너지가 행복 에너지로 변형된다.
붓다는 습관 에너지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강력한 이미지를 사용했다.

첫째, 그는 습관 에너지를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여자에 비유했다. 건장한 두 남자가 양쪽에서 여자를 잡고 있다. 물론, 여자는 겁에 질려 있고 자신의 운명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소용없다. 그 여자는 결국 불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둘째, 붓다는 습관 에너지를 병에 든 물을 막 마시려고 하는 매우 목마른 사람에 비유했다. 이 사람이 물을 마시려는 순간 누군가 물에 독이 들어 있다며 멈추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목마른 사람은 너무 심한 갈증에 죽을 줄 알면서도 독이 든 물을 마신다.
셋째로 붓다는 습관 에너지를 작은 새가 고기 조각을 훔쳐 하늘로 날아오를 때 벌어지는 일에 비유했다. 커다란 새가 와서 작은 새의 고기를 빼앗으려고 하면 작은 새는 포기할 줄 모른다. 커다란 새에게 죽을지도 모르는데 끝까지 고기를 놓지 않는다. 소중한 고기 조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런 거부하기 어려운 힘을 길들이기라고 한다. 우리의 길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에 반응했던 방식대로 반응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행동의 결과는 미래에 동일한 행동을 할 가능성의 정도를 결정한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은 반복될 가능성이 낮다. 더욱이 단기적인 결과는 장기적인 결과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런 강력한 힘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과가 나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장에 즐거움을 주는 일을 참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길들이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실험동물을 달아날 수 없게 해놓고 전기충격을 가하면, 전기가 흐르는 금속판 위에서 그 동물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실험동물은 극도로 흥분하여 전기충격에서 달아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곧 포기한다. 그 후 실험자가 실험 조건을 바꿔 금속판의 반쪽에만 전기를 흐르게 하면 그 동물은 단지 금속판의 다른 부분으로 가기만 하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으나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전기충격 앞에서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습관 에너지는 매우 강력하다. 간혹 우리는 어렵게 그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주장하고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속수무책으로 습관 에너지에 사정없이 휘둘린다. 습관 에너지는 변화하려는 우리의 의지보다 훨씬 강력해서 우리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해롭고 불행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어찌할 도리 없이 지속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길들이기의 강력한 힘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심하게 다그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다그치면 불구덩이에 기름만 더 붓는 꼴이고 갈증이 더 심해지며 위험한 줄 알면서도 집착이 더 심해질 뿐이다. 대신 우리가 이런 요인들의 강력한 힘을 명확히 이해한다면 스스로 길들이기에 얽매인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행복은 다툼이나 혹독함이 아니라 자애로움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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