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편협한 사고를 버리려면 다음 아홉 가지를 실천하라 2

 

변화 5: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우리의 마음은 종종 자동 항법 장치와 같아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해야 할 때 살아오면서 획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판단한다. 과거의 경험과 비슷한 상황이나 사람 혹은 사건을 겪게 되면 우리는 친밀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전체 그림을 보지도 못하고 있고, 새로운 가능성이나 시각을 향해 진정으로 열려 있지도 않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살짝 바꾸어보자면, 하늘과 땅에는 우리의 철학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협소한 생각을 가지고는 배울 수 없다.
불행히도 학교는 개인의 마음을 넓히기보다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 게다가 경제적 불안감은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인문학이나 예술보다는 좀 더 기술적인 과목들을 배우도록 부추긴다. 이에 더해 사람들은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불안해하는 나머지, 종종 자신보다 더 영리하거나 지식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피하거나 심지어 적대시한다. 요즘에는 교육받은 이들을 ‘짝퉁’이나 ‘엘리트주의자’로 분류하면서 점점 경시하기까지 한다. 이런 세태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콤플렉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의사의 설명이나 경제학자의 복잡한 이론을 이
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또한 텔레비전이나 보는 대신 더 높은 학위를 받는다거나 책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이 속한 계급을 저버리고 있다고 느낄 필요는 없다. 방어적 태도로 뒷걸음질 치다 보면, 배움을 얻기는커녕 부끄러움만 가중될 뿐이다.
아무리 똑똑하거나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지식은 허점을 가지기 마련이고 뒤틀린 자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당신 자신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보라. 자신의 주장이 논리적이지 않을 가능성에 직면했을 때, 무언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느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긴장된 태도를 취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가?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도 않으려 하지 않는가? 만일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보다 더 완전하게 이해한 듯한 사람과 토론하는 중에 자신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해보라. ‘이건 내게 좀 부담스러운 주제로군. 괜찮아, 용기를 내어 내 생각의 폭을 넓히면 되지.’ 그리고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라. 인내하고 자기애를 가질 수 있
도록 다음과 같이 기도해보라. ‘저의 불안을 치유하고 편견을 없앨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새로운 시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면, 이런 상황도 더 지혜롭고 열린 생각을 가질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역사와 다른 문화, 예술을 탐구하는 천생의 구도자가 되어 자신이 가진 사고를 확장할 수 있고, 그러지 않았으면 놓쳤을지도 모를 연결고리를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지적 능력을 더 계발할 필요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더 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냉혹한 자기 판단은 파괴적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배우는 단계에 있다면, 스스로를 사랑과 배려 그리고 솔직함으로 대하기 바란다. 난처한 지적 도전에 직면했을 때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잠깐, 내가 조금만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관지을 수도 있을 거야.’ 두려움을 없애면,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으며 접하지 못한 정보가 아직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변화 6: 상투적 표현과 축자적인 해석을 넘어서기
이 바쁜 세상에서 우리는 복잡한 생각과 경험을 담지 못하는 짧고 진부한 표현으로 자주 소통한다. 속도를 늦추고 삶의 달콤한 풍요로움을 받아들여, 짧은 소통 대신 더 자세하고 여운을 남기는 대화로 우리의 열린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생각 없이 오직 사소한 수다만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투적 표현은 단지 뉘앙스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세부 사항을 빠뜨리기 때문에 실제로 상황의 진실을 숨기는 데 일조한다. 그러므로 텔레비전 화면 아래쪽에 나오는 뉴스 제목만 일별함으로써 정보를 얻지 말고, 신문의 1면만 보고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정보들은 당신을 지적으로 자극하지도 않고, 더 넓고 완전한 시각을 주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심도 있는 토론에 참여해보라. 당신을 지적으로 고무하는 양서들과 내용 있는 기사를 읽어보라. 문제를 깊이 있게 보려면, 승용차에 붙은 광고 스티커의 문구나 항의 푯말에 적힌 구호 이상을 알아야 한다.
편협한 생각에 빠지면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난번 내가 언급했던 플라톤의 이론을 기억해보라. 보이는 세계에서 우리는 단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하는 무한하고 완벽한 형태의 열등하고 제한된 버전version을 만들어낼 뿐이다. 제한된 인식에 사로잡힌 우리는 돈을 많이 가졌을 때 혹은 특별히 빼어난 몸매나 용모를 가졌을 때만 만족스러움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열린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는 정의와 아름다움, 사랑과 풍요, 일체감 등의 완전한 형태에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
열린 사고를 가지게 되면, 이런 형태들에 관한 우리의 관념이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운명에 의해 상처받고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는 대신, 신의 은총을 즐기고 영적 존재의 도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변화 7: 정보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소화하기
우리는 점점 더 정보를 쏟아내는 기술에 중독되고 있다. 어떤 것들은 굉장히 유용하고, 어떤 것들은 가치가 제한적이며, 또 어떤 것들은 그저 아무 쓸모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빨리 우리에게 다가오므로, 우리는 얼른 받아들이고 소화해야 한다고 느낀다. 음식을 제대로 씹어 삼키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를 늦춤으로써 아무 정보나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의식의 한 부분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의미 없고 해롭기까지 한 정보에 휘둘리기 쉽고, 때로는 집착하기까지 한다. 그것이 뇌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에서 매일 헤엄치고 있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보에 압도당하기 쉽다. 극히 소수만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이 시대의 소음을 걸러내고, 자신의 의견을 알리려는 사람들의 편견을 뚫고 나갈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수많은 정보가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얻은 정보를 심도 깊게 파헤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만의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사건 보도에서 속도 경쟁을 하는 매체의 뉴스를 접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는 단체와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다. 언론 매체들은 급한 나머지 종종 거짓인 뉴스나 두려움을 부채질하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로 밝혀진 일들을 우려 섞인 뉴스로 내보내기도 한다. 속도를 늦추라. 그리고 당신이 접하는 것들에 대해 일단 의심해보라. 또한 매일 순간순간의 뉴스를 접하기보다 주간, 월간 혹은 연간 단위로 정보를 접해보라. 이 모든 정보를 ‘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자아에 상처를 주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토론에 참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서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반대편을 멍청하거나 무식하다고 매도하는 토
론이라면, 배울 점이 전혀 없다.
또한 복잡한 관념을 즉각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기 바란다. 무식해 보이면 안 된다는 불안감은 당신을 초조하게 하고 사고 과정을 왜곡한다. 최근 논점이 된 어느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모른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산더미 같은 정보의 바다에서 정신을 놓고 사는 것은 삶에 보탬도, 해도 되지 않는다. 이 우주의 지혜에 보탬이 되지 않는 가치 없는 것들은 일체감의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당신의 의견과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 바란다. 또한 새롭고 색다른 시각에 마음을 열어두기 바란다. 누가 가장 먼저 중요한 무언가를 해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당신이 마주하는 것들로부터 지혜와 이해심을 발전시켜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변화 8: 대가를 기대하고 지혜를 제공하는 이들을 경계하기
많은 이들이 이기심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유로 우리에게 지식을 제공하려 한다. 길을 잃고 지혜에 목말라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들의 가르침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실망하게 된다. 누군가가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사람의 자아는 점점 더 커지고 그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를 점점 노출하게 된다. 누군가가 개인적으로 잘사는 법에 대해서만 충고할 뿐 더 큰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아에만 호소하는 그릇된 지혜다. 우리 모두 ‘나’에게서 주의를 돌려 ‘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변화 9: 진정한 회의주의 실천하기
얼마 전에 한 고객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영매나 영적 능력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나는 그의 솔직함에 감사하고 건강한 회의주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최근에 죽은 그의 부인(독특한 그녀의 이름까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직 그와 의사만이 아는 죽음의 원인과 함께 부인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 고객은 내 말을 시인하고 계속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시작했는데(고객의 삶의 방식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종종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중간에 내 말을 끊더니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으로 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요.”
나는 내가 한 이야기는 너무나 세세해서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다고 답했고, 그는 마지못해 이에 동의했다. 또한 그가 나에게 전화한 시간과 실제로 상담한 시간 사이에 10분 남짓밖에 차이가 없었는데, 만약 그동안 그 많은 정보를 다 찾았다면 나는 인터넷 검색의 천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걸 다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정말로 하나도 못 믿겠어요.” 나는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완벽한 사례가 또 있을까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신성하고 치유력을 지닌 연결고리(우리를 죽은 사람들, 낯선 사람들, 과거와 미래 등에 결속시켜주는 일체감)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제한되고 편협한 생각에 가로막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영매나 심령술사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을 속이려 드는 사기꾼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회의론자란 뜻의 skeptic이란 단어는 그리스어 skeptikos에서 온 것인데, 원뜻은 ‘반성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날 회의론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열린 마음으로 점검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기시감이나 예지몽, 정신적 세계와의 교감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미래를 예언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의 과거를 직감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없는 올바른 회의주의자라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 한번 연구해봐야겠으니 판단은 잠시 유보해두겠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객관적인 과학적 잣대에 맞추어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제한적이고 편협한 사고이며, 이는 진정한 회의주의라고 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없으면(내가 설명하거나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면, 세상은 점점 더 협소해질 뿐이다. 나는 과학자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접할 때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기를, 배우고 연구하
는 자세로 대하기를 바란다. 사회과학자들은 전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을 검토해서 “이러한 경험이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생각이 편협해지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열린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건강한 회의주의는 비록 다른 사람의 문화와 믿음을 공유하거나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존중한다.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힘이 있고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려는 목적으로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때로는 상처받고 불안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러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을 연민 어린 마음으로 대하고, 쓸데없이 당신의 자아를 내세우지 말라. 세상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열린 자세와 호기심을 유지하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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