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세력이 오랜 투쟁 끝에 몸에 익히게 된 건 반민주화다
민주화세력이 오랜 투쟁 끝에 몸에 익히게 된 건 반민주화다.
반민주화세력과 오래 투쟁하다보니 그들의 습성이 조금 몸에 익혀진 것이다.
반면 반민주화세력은 민주화세력에 오래 시달리다 보니 생존을 위해 어느 정도 민주화 습성을 갖추게 되었다.
국민이 혼란스러운 것은 바로 이 놀라운 두 가지 변신 때문이다.
오랫동안 민주화를 지지해오던 사람들은 민주화세력의 반민주화 태도에 증오심을 갖게 되었고, 오랫동안 반민주화를 혐오하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반민주화세력에게서 민주화의 조짐을 발견하고 그 세력을 용인하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두 세력이 오래 싸우다 보니 서로 닮게 된 것이다.
오늘날 여당과 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이런 점에서 다분히 비롯되었다.
반민주화세력이 조금씩 민주화 습성을 익히게 된 것은 생존에 대한 몸부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원래 반민주화세력은 목적만 좋으면 그 과정은 반민주적이라도 용인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지닌 세력이다.
그래서 오늘날에까지도 정권이 민간사찰을 감행한 것이고, 부정부패한 사람들을 기용한 것이며, 국가의 중대한 사안을 국민 몰래 저들끼리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반민주화세력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핵심멤버들이 줄줄이 검찰의 칼날에 목이 달아나는 것으로 일단 위축된다.
그러나 그 뿌리는 새로운 토양을 만나면 다시 과거의 영화를 누리게 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반민주화세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세력의 반민주화 경향이다.
민주화를 신주 떠받듯이 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독선과 아집이라는 반민주화의 증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은 반민주적이어도 좋다는 해괴한 논리를 신봉하게 된 것이다.
반민주화세력에게서 배운 점이다.
사나운 시어머니 밑에서 며느리 생활을 한 사람은 자신도 어느새 사나운 시어머니가 된다.
독재자에게 항거하던 사람이 자신도 어느새 독재자가 된다.
과거에 민주화운동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밀려나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을 본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비민주적 사고를 구현하고 있는 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수의 바람을 저버리는 것이다.
그토록 훌륭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이 바람직한 그 가치를 버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독선과 아집으로 독재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순정을 바쳤던 사람들이 죄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말만 민주화를 외치고 실제로는 자신들의 영달을 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민주화세력과 오래 투쟁하다보니 그들의 습성이 조금 몸에 익혀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