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종교와 영성
물론 종교에는 해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성에는 경험이 중요하다. 영적 의미를 탐색하고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를 탐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신의 현현顯現을 경험하고 나서야 만족되는 하나의 갈망이다. 어떤 면에서는 일체감에 대한 인간의 갈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영적 경험보다 그에 대한 해석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는 종종 문화적 정체성에 매몰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는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야”라든가 “나는 뉴욕의 유대인이야” 혹은 “나는 유럽의 기독교인이야”라는 표현을 종종 듣는다. 당신의 믿음과 문화적 정체성은 더 큰 일체감의 일부로서 우리의 정체성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두 가지 정체성 모두가 우리의 가슴속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모든 존재와의 합일을 경험하고 나면 그때부터 우리는 진정한 영적 본성을 깨우치게 되고, 사랑과 격려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되고, 그리하여 영원한 평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당신의 영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눈을 뜨게 되고, 이 깨달음을 삶에 실천함으로써 다른 이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갈망하게 된다.
종교는 일체감의 힘을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갈망의 결실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과 영적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지와 이야기와 제의적 행사를 이용해 종교를 만들어냈다. 개인적인 믿음은 우리에게 힘과 위안을 주는 경향이 있고, 종교적인 예식은 영적 존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우리의 영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이 믿지 않는 종교에 대해서는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그들의 신성성이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되었는지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종교는 신성함과 치유의 힘을 지닌 연결고리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영성은 너무나 오랫동안 균형을 잃어왔다. 교회나 다른 종교 공동체에 본래의 의미를 되찾을 것을 요구하자. 그래서 이들이 조화를 되찾을 수 있게 돕자. 그곳을 영성과 공동체적 삶의 중심이 되게 하자. 영성이 배양되는 장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자. 그 속에서 우리는 세계의 치유를 위해 우리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종교적 아집에 빠져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개념을 받아들이라고 이웃에게 강요하지도 말자. 대신 일체감을 실현하여 신의 은총을 세상에 널리 알리자.
종교적 편견에서 벗어나 의식을 전환해보라. 그리고 잠시나마 영적 환희와 마음의 조화 그리고 기쁨을 누려보라. 명상과 기도를 통해 신과 소통할 때, 차분히 일체감을 성찰할 때,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할 때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신성한 영적 존재는 당신을 부드럽게 감싸안아 안심시켜줄 것이다. 자애롭게 당신의 영혼을 보듬어줄 것이다. 당신을 완전한 평화로 이끌 것이다.
눈부시게 햇살이 빛나는 날에 행복한 기운을 들이마시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있는가? 겨울날 흰 눈이 지붕에 내려앉는 광경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따뜻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반려 동물과 장난칠 때 혹은 친구와 수다를 떨며 웃을 때, 우리는 삶에서 충만함을 느낀다. 이러한 순간은 짧지만 우리에게 일체감의 일면을 일깨워준다. 분열과 소외는 보이는 세계에서 경험하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충만함을 느끼는 그 짧은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존재의 완전함을 경험하는 찰나다.
현실의 지루함 속으로 돌아오기 전의 이러한 황홀 상태에 우리는 더 자주 그리고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걸음을 늦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타인과의 소통을 그리고 자연의 질서정연한 움직임을 받아들여보라. 사랑을 표현하고, 분노를 피하고, 참을성을 가지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주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자신과 다른 모든 존재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라. 지구를 소중한 집이라 생각하고 대하라. 무엇보다 신성한 연결고리를 믿고 직접 경험하라. 당신의 취미 활동들, 축복받은 삶의 환경들, 당신을 아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 그러고 나서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간단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라. 작은 일에서도 생명의 완전함을 깨닫도록 항상 자신을 열어두라. 그러면 몸의 내부에서 진동이 전해지면서 뭔가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체감이다. 스스로를 ‘비종교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신을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엄격한 종교적 독단이나 이론에 함몰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또한 전통적인 종교 단체나 조직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일체감으로의 위대한 합일과 전통적 의미의 신이나 종교는 서로 다르다. 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많은 이들은 두렵기 때문에 더 큰 세상과 연결된 일체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영적 탐험가들(신학보다 사랑과 자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수는 특정 종교에 깊이 파고드는 사람 수보다 아직 적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종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균형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개인이 영적인 여행을 지향해감에 따라, 교회도 전통적 가르침과 기존 지도자들에게 대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서히 일체감을 받아들일 것이다. 당신의 영적 탐험에 도움이 될 조직을 찾고 있다면 연합교회Unity Church나 종교과학교회Church of Religious Science 혹은 유니테리언 보편구제설 교회Unitarian Universalist Church처럼 새로운 생각에 기초를 둔 교회에 몸담아보는 것도 좋다. 작은 조직 안에서의 경험을 마다하고 더 큰 공동체에서의 영적 도움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른이 된 지금, 유년 시절에 다니던 교회를 찾아가 보라. 그러면 그때의 가르침이 어떤 깊은 의미를 지녔는지 깨닫고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일체감을 받아들이면, 언어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볼 수 있게 되어 친숙한 기도조차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한 가지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 사랑의 근원과 연결되는 기쁨을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점점 균형을 찾아갈수록, 과학과 종교의 불화는 점점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영성이라는 한자리에 모이게 될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