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온五蘊
붓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지만 자아를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그가 발견한 건 그가 오온skandhas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오온이란 상호의존적인 요소들이 가득 쌓여, 점증적으로 자아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 색온色蘊 form
• 수온受蘊 feeling
• 상온想蘊 perception
• 행온行蘊 mental formation
• 식온識蘊 consciousness
오온의 각 요소는 끊임없이 흐르며 변화하는 냇물과도 같다. 오온의 가르침은 실재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서로 중복되지 않는 조각들로 분석하는 방법이 아니라 수행의 한 방법이다. 오온의 각 요소를 명상의 주제로 삼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중 어떤 것도 견고하고 지속적인 자아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자.
색온色蘊
색온에 모든 생리적, 육체적 현상이 포함된다. 수행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색온이 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마음챙김으로 몸을 돌보는 것이 마음챙김의 기초가 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우리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긴장이 되는가? 그 긴장은 정확히 어떤 것인가? 답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질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 자신의 몸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색온에 대한 마음챙김을 수행하는 것이다.
수온受蘊
수온은 느낌에 관한 것으로 유쾌, 불쾌 또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중립적 감각을 의식하는 것이다. 발가락을 어딘가에 부딪쳤다면 우리 모두 불쾌한 감각을 느낀다. 그러나 호흡처럼 미묘한 감각을 늘 의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흡을 의식하고자 하면 처음에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루하거나 불쾌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챙겨 호흡에 집중하면 숨을 들이마실 때 무더운 날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 같은 유쾌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숨을 내쉴 때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진정되는 듯한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숨쉬기에 집중하면 무감정했던 경험이 유쾌한 경험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유쾌, 불쾌 또는 무감정으로 판단하는 것을 불교 심리학에서는 자아의식manas이라고 한다. ‘나’ 또는 자아, 즉 자아라는 감각이 생기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자아의식이다. 자아의식을 통해서 유쾌하거나 불쾌한 감각을 경험할 때 우리는 단순히 감각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개입시킨다. ‘여기에 불쾌한 감정이 있다’라고 하거나 ‘여기에 유쾌한 감정이 있다’라고 하는 대신, ‘난 유쾌한 기분이야, 이게 내가 원하는 거야’라고 하거나 ‘난 불쾌한 기분이야, 이 기분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감정은 그 감정에 대한 판단에 따라 생겨난 것일 뿐이다.
감정은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판단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어떤 감정이 불쾌하다는 느낌이 있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대상, 즉 ‘나’, 자아, 자신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정지된 사진을 빠르게 돌리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감정과 그 감정에 대한 판단이 빠르게 흘러가며 자아라는 환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에 대한 판단에 따라 감정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상온想蘊
모든 상온에는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지각이 포함된다. 우리는 구름을 보면 그것이 구름이라는 것을 알고 나무를 보면 그것이 나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못되었다. 먼저 실제 나무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나무에 대한 생각과는 다르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예로 들면 해질녘 땅 위에 있는 밧줄을 보고 그것이 뱀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 두려움은 불완전한 지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리학 입문서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알겠지만, 우리의 지각은 놀라울 정도로 오류투성이다. 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곡선의 양 끝이 서로 완벽하게 만나지 않는다. 또 우리는 연속해서 보이는 일련의 빛을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 왜곡된 지각은 특히 중요하다.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우리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을 오해해서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는가?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지만, 우리는 종종 이를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또한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늘 바꾸게 할 수도 없다. 스스로 인식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인식이 부정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복하여 자기 자신에게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걸까?” 하고 자문해봄으로써 우리는 점차 더 깊고 정확한 시각에 이를 수 있다.
행온行蘊
모든 행온은 다양한 심리 상태들을 다룬다. 우리는 사랑, 평화, 행복, 기쁨뿐만 아니라 질투, 시기, 분노, 증오, 슬픔과 같은 심적 형성도 가지고 있다. 이중 어떤 건 유익한 것이어서 우리를 일깨우고 자유롭도록 도와준다. 또 어떤 건 유해한 것으로 우리를 구속하고 고통의 길로 이끈다. 행온이 유익한지 유해한지는 단순히 우리가 유쾌하게 느끼느냐 불쾌하게 느끼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죄책감을 느낀다고 가정해보자. 그 죄책감이 신경증적 자기 회의가 아니라 실재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우리에게 유익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 감정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유익하고 타당하다. 그 감정에 시달릴 필요
가 없다. 그래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교훈을 얻고 변하면 된다.
식온識蘊
다섯 번째 오온인 식온은 수온, 상온, 행온을 담는 그릇이다. 식온은 유지, 인식, 비교, 저장, 기억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는 식온을 그 자체로 알기보다는 주로 그 내용을 통해서 알게 된다.
명색名色: 더욱 단순한 접근
오온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 붓다는 더욱 단순한 명색Nāmarūpa이란 용어로 압축해서 설명했다. 나마nāma는 ‘마음’을, 루파rūpa는 ‘몸’을 의미하므로 합쳐서 마음과 몸이다. 오온이나 명색 모두 수행에 관한 설명으로 명상의 주제가 된다. 우리 자신을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으로 살펴보거나 아니면 단순히 명색으로 살펴보면 된다. 명색으로 살펴본다는 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지, 몸이 무엇인지, 이런 경험의 흐름 속에 안정되고 실체가 있는 나라는 무엇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는 마음챙김의 중요한 수행이다.
붓다는 우리의 실체를 보는 유일하고 바른 개념적 도식으로 오온이나 명색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요점은 우리의 실체에 대한 경험을 이런 식으로 분류해서 살펴볼 때, 이런 요소들 사이에 자아가 없음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온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자아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환상을 깨뜨릴 수 있다. 각각의 요소는 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자아가 아니라 유동적이며 역동적인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