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는 무아에 저항하는가
자아로 존재하는 느낌이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하고 집요한 환상이어서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우리는 일찍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이론물리학자들은 시간을 환영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한 이가 아인슈타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겉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척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시간이 환영이라면 우리는 무엇이며, 자아란 또 무엇일까?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느낌 때문에 지속적인 자아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간 자체가 실재가 아니라면 우리라는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아라는 통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조금 두려워질 수도 있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자아라는 의식에 매달려 붓다의 통찰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붓다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무아를 이해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실재하지 않는 것은 잃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무아란 개념이 아니라 반反개념으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구별과 집착에서 해방시켜 주는 붓다의 처방 중 하나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마음을 열고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갈 수 있으며, 폐쇄적이고 강박적이며 방어적인 경험들을 덜어낼 수 있다. 붓다는 무아를 절대 진리로 제시한 적이 없다. 다만 하나의 ‘능숙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개념에 집착하면 위험하다. 또한 붓다는 무아에 대한 집착이 자아에 대한 집착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경고했다.
자아를 버리는 두려움이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려움에 맞서 자아를 버리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지금 주먹 속에 쥐고 있는 무엇인가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더욱 꽉 움켜쥐는 것처럼 말이다. 인내심을 갖고 조심스럽게 손을 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자신을 혹독하게 다그칠 필요는 없다. 그저 손을 펴기만 하면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