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아에 집착하는 고통
붓다는 우리가 자신을 분리된 자아, 즉 시공을 통해 변치 않고 살아가는 독립체로 믿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고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애를 써야 한다. 이런 패러다임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다 심한 교통 체증으로 인해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고속도로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만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서로 전진하려고 싸우는 분리된 개개인이다. 직장에서는 어떤가. 주변에 있는 동료는 경쟁자들이거나 잠재적 경쟁자들일 뿐이다. 우리는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라면 친구와 가족마저도 조종하려고 시도한다. 실제로 무아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고립된 자아로서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경쟁한다.
경험에 자아라는 개념을 덧붙이게 되면 우리의 정체성 때문에 다시 고통을 받게 된다. 누군가 우리를 비난하고 화를 내며 상처를 준다면 분노 혹은 슬픔이 생길 것이다. 이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는 고통받고 있어! 난 슬퍼! 난 화가 나! 이건 정말 최악이야!’ 하고 말할 때, 그것이 문제가 된다. 물론 우리는 불쾌한 느낌보다 유쾌한 느낌을 선호하지만, 이 느낌이 ‘나의 것’이야, 또는 이 느낌이 바로 ‘나’야 하고 불쾌한 느낌을 확인하게 되면 그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것이 된다.
심지어 자아는 우리 자신, 우리의 유기체와 생각, 그리고 감각의 한계를 넘어선다. 우리의 구별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으로 확장된다. 나의 집, 나의 옷, 나의 일, 나의 차, 나의 음식, 나의 배우자 또는 나의 파트너, 나의 아이, 나의 부모, 나의 친구에까지 이른다. 자아의 정체성을 확대함으로써 우리가 불행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나의 것으로 여기던 것들이 없어지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 상당히 과민한 더듬이들이 우리 몸 전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작은 일에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이런 확대된 자아의 정체성으로 인해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움켜쥐려고 한다. 우리는 자아의 느낌을 모든 사물, 사람에게 확대하기를 바란다.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해 자신을 혹사하고, 무엇인가를 잃으면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에는 사라질 것들이다. 붓다는 우리에게 묻는다. 불안, 고갈, 슬픔, 절망을 야기하지 않는 것을 네가 계속 보유할 수 있는가? 일부를 자아로 간주한다면 나머지들은 자아가 아닌 것을 의미하므로 자아의 패러다임은 폭력을 영구화한다. 우리는 자아가 아니라고 보는 것,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와 분리된 이질적인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의심한다.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들은 위협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것들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가혹하게 다룰 수 있다. 전쟁이 한 예가
된다. ‘다른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을 경멸하고 상대방과 상대방의 아이를 다치게 하며 불구로 만들고 죽이기까지 하지만, 소위 전쟁에서 발생하는 부차적인 피해로 간주하고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도 같은 식으로 우리를 보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낌 없이 같은 일을 우리에게 저지른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모든 대상에 죄의식 없이 상처를 주며, 그 대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친구가 우리를 화나게 했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를 무시하고 등한시하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여동생이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면 우리는 그녀가 더 이상 동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동생과 더 이상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운에서도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까지 찾아야 한다. 직업적인 성공이나 사랑 또는 그 밖의 무엇이든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이 우리 자신도 바라던 일이었다면 질투심이 생긴다. 이런 감정을 의식하게 되면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이 불쾌한 감정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심리적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심리적 방어 기제는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부러워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조차도 의식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는 어떤 식으로든 친구의 성과를 가능한 한 평가절하하거나, 친구에게 찾아온 좋은 일이 실제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자격도 없는데 친구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자아라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집착과 다툼을 멈출 때 우리의 고통도 사라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기는 좋은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침착하게 그들과 함께 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버리면 행복이 달아날 거라는 두려움에 차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더 많이 버릴수록 더 행복해진다. 자아의 구별을 종식시키는 것이 우리의 고통을 끝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