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버리기

 

비영구성의 통찰을 거부할 때 자아에 대한 붓다의 통찰은 더욱더 충격이 된다. 자아에 대한 붓다의 시각은 문제의 근원, 즉 불행의 근원을 다룬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붓다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 통찰로 그 자리에서 불행을 영원히 떨쳐버리고 깨우침을 얻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일까 하는 문제를 떠나서 이를 통해 우리는 변화, 고통에서의 해방, 행복을 위한 그의 통찰에 높은 가치가 부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붓다는 우리가 자신의 경험을 깊이 들여다볼 때 자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 내부에는 우리를 조종하는 호문쿨루스homunculus(라틴어로 ‘작은 생명체’라는 뜻), 즉 난쟁이가 없다.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몸과 몸의 감관, 그리고 마음과 마음의 사고 과정뿐이다. 이 가운데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 신경심리학자로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공동저자인 릭 핸슨은 말했다.
요컨대, 신경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통일된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일상의 느낌은 완전한 환상이다. 일관성 있고 실체가 있는 듯이 보이는 ‘나’는 실제로 고정된 중심이 없이 발달 과정 내내 많은 하위 조직과 그 아래 하위 조직으로 생성되며 경험의 주체가 있다는 근본적인 감각은 서로 다른 무수히 많은 주관성의 순간들로 만들어진다.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전적으로 무아의 요소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장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물질과 에너지를 주변의 환경과 교환한다. 예를 들면 음식을 먹을 때, 조금 전만 하더라도 자아가 아니었던 것이 이제는 자아의 일부가 된다. 마찬가지로 숨을 들이마시면 자아가 아니었던 공기분자들이 자아가 되고, 숨을 내쉬면 자아였던 공기분자들은 더 이상 자아가 아니게 된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 자아였던 물질이 더 이상 자아가 아니게 된다.
우리가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햇빛이다. 우리는 흙이다. 우리는 물이다. 우리의 모든 것이 이런 것들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그 밖의 모든 것과 분리된 정적인 자아가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 그리고 우주 만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적인 생명 과정이다. 수없이 많은 인연들이 모여 우리라는 존재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인연과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그 무엇과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붓다가 살던 시대의 힌두교의 믿음과 수행을 배경으로 무아를 이해할 수 있다. 힌두교의 가장 심오한 진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이 신이라는 뜻이다. 붓다는 수년간 자기 내면에 있는 아트만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지쳐서 찾기를 포기하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을 때 비로소 깨우침을 얻었다. 자아 같은 것은 없다! 그 순간 붓다는 슬픔을 뒤로 하고 열반의 행복에 들어섰다. 이 충격적인 생각이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열쇠다. 우리 자신이 세계와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신이 소중하다거나 소중하지 않다는 생각 또는 자존심이 높거나 낮다는 생각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 이것은 우리 의식 속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단순한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단지 우리 의식 속에서 춤추는 우주의 에너지일 뿐이며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다. 이런 생각이 사실인지 아닌지 마음속으로 고민하게 되면 점점 더 그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무아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곧 사라진다. 단지 좀 더 생각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런 개념의 타당성을 고민하기보다는 그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개념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생각일 뿐이며, 왔다가 가버리는 정신적인 현상일 뿐이다. 무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자아에 집착하는 고통과 이 통찰을 우리가 거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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