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경쟁을 초월하는 방법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빈배가 와서 부딪혔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 아무리 성격이 나쁘다고 해도 충돌해 온 배에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이상 화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 배에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은 분명 배 주인에게 화를 낼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바로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라는 뜻이다. 당신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빈 배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배와 충돌해도 상대방은 당신에게 화내지 않는다. 당신은 빈 배와 같아서 상대방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어디를 가든 남과 겨뤄 이기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은 당신의 배가 아직 자신이 타고 있는 배와 닿기도 전에 당신을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노자는 ‘허虛’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도를 익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련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자』 16장을 보자. “치허극致虛極, 수정독守靜篤” 완벽하게 비웠을 때 완전한 정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득 찬 것을 좋아한다. 노자도 가득 찬 것이 나쁠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배는 채워라. 마음을 어떻게 비워
야 할까?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까? 노자가 말한 ‘허’를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늘 유치원 앞을 지나갔다고 하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울까? 간단하다. 단순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얼굴만 봐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이 때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점점 자라서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간다. 이때도 부모님을 보면 그저 좋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 전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은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아졌지만 예전만큼 즐겁 경쟁하지 않고도 이기는 지혜지는 못하다. 그래서 첫 번째 허虛 자는 되도록 단순해지라고 말한다. 종종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요즘 나는 즐거운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면 지금 당신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목표만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좀 고생스러워도 정작 자신은 그것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표가 동시에 두 개 이상 생겼을 경우에는 힘들어진다. 시시각각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두 가지가 동등하게 공존하기는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허의 핵심은 ‘단순’으로, 인생의 순간순간을 단순하게 살라는 것이다. 저마다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면 모든 노력을 그곳에 쏟을 수 있기 때문에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두 번째는 정靜이다. 옛날 사람들 가운데 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청동으로 만든 거울을 샀다. 깨끗하게 닦은 후 그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으면 강가로 달려가 물에 비친 모습을 봐야 했다. 그러나 강물은 흐르기도 하고 가만히 정지해 있기도 한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면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지해 있는 평평한 물에 얼굴을 비춰야 했다. 장자는 거울을 사용한 비유를 즐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인용심약경至人用心若鏡”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는 뜻이다. 바꿔 말해 거울 자체에는 티끌 하나 없는데 당신의 몸에 온갖 먼지와 때가 묻어있어서 흐릿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왜 사람 하나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편견이나 집착 혹은 독선 때문이다. 마음이 거울처럼 깨끗해서 그 어떤 집착이나 잡티도 없다면 만물이 당신 마음속에 원형 그대로 매우 선명하게 비칠 것이다.
노자의 허와 정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가사상은 경쟁이 사회 진보와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요소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 전체의 경우이며 개인일 경우는 문제가 달라진다. 개인이 경쟁 여부를 선택한다고 하자. 젊은 시절에 좀 더 많은 도전과 경쟁을 받아들인다면 자연의 법칙에 더 부합하는 선택이다. 그러나 평생을 경쟁하며 살겠다고 한다면 고생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만약 경
쟁이 불가피하다면 어느 한 분야만 싸워 지키고 그것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자는 허정虛靜을 생명의 본질로 보았다. 만물의 성장 과정은 지극히 복잡하고 활력이 넘치지만 사실 생명은 무에서 유로, 다시 유에서 무로 흘러가며 결국 공허하고 고요한 근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진정으로 허정과 공령空靈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해탈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경지에 도달해 허정이라는 최상의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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