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개념에서 벗어나기

 

 

자아는 우주의 춤 속에 있는 중심이며,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다는 사실을
지각하고, 빈 공간으로 돌아가고 있다.
즐거워하라. 모든 존재를 찬양하고 감사하라.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1915~68)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리면서 “하늘에서 선인장이 떨어져요. 피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고 말 거예요!” 하고 말한다면, 우리는 분명 이 사람을 정신이상자로 간주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람의 말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잘못된 지각에 근거하여 우리는 이 사람이 끔찍한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라고 동정할 것이다.
붓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문 앞에 서 있는 이 불행한 사람과 유사하다. 우리도 그 사람처럼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은 깊이 몸에 밴 사물의 이치에 대한 잘못된 개념에서 비롯한다. 우리와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차이는 우리의 생각만큼 크지 않다. 이것이 뜻하는 바를 살펴보자.

 

● ● 개념은 위험하다

 

선불교 전통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행위들이 있다. 한 선사는 ‘붓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입을 세 번 씻으라고 가르쳤다. 스승의 뜻을 알아차린 제자 하나가 ‘붓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귀를 세 번 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도 과격하고 상식을 벗어난 선사들이 불상을 태우거나 방을 나설 때 신발을 머리 위에 얹는 식의 행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나라 말의 고승 임제臨濟는 길을 가는 도중에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여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이런 스승들은 극단적이고 잊혀지지 않는 방법과 불손한 언행으로 우리의 모든 관념, 신념과 개념들이 단순한 관념, 신념, 개념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의 참 본질인 경이로운 생성 앞에서 그 빛을 잃는다. 개념으로 실재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은 손으로 물을 움켜쥐려
하거나 그물로 공간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개념은 위험할 수도 있다. 땅과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은 땅과 재산을 파괴하지 않는데, 그것들이 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념을 명목으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의 이념에 반하는 사상을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한다. 공산국가 중국이 티베트를 무참히 짓밟은 것을 한 사례로 들 수 있다. 중국은 티베트에 있는 둘도 없이 소중한 필사본과 사원을 파괴하고,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수년간 옥에 가두고 고문까지 했다. 중국은 이념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기 때문에 무자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불교의 이념을 공산주의와 유물론으로 바꾸기를 바란다.
좀 더 성스러운 개념은 좀 더 위험할 수 있다. 붓다라는 개념조차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붓다는 평온, 자애, 지혜, 행복을 위한 우리의 능력이다. 붓다를 우리 밖에 있는 실체로 생각하는 덫에 빠지면 붓다가 실제로 발견될 수 있는 곳을 결코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몇 킬로미터 밖의 어두운 곳에서 잃어버린 열쇠꾸러미를 근처 가로등 아래서 찾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는 열쇠가 가로등 아래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가로등 아래가 더 밝기 때문에 그곳에서 열쇠를 찾는 것이다. 붓다가 늘 존재하더라도 붓다는 우리 자신 안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붓다를 우리 밖에 있는 어떤 존재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늘 다른 곳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스승을 만나거나 특별한 수행을 한다면 붓다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밖에 있는 붓다는 붓다가 아니다. 오직 우리 속에 내재하는 붓다만이 유일한 붓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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