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하라
우리의 축복을 헤아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아는 것 또한 좋은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열의도 없이 산수 숙제를 하는 아이처럼 마지못해 이런 수행을 강요받아 기계적인 방식으로 하는 데 있다. 이런 식으로 수행을 할 경우 효과가 있기나 한지 알 수 없으나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성취하기를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어렸을 적 저녁식사를 하다가 인도에서는 아이들이 굶고 있는데 음식을 남긴다고 주의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부모의 그런 명령의 이면에 좋은 의도가 있었더라도 그 결과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음식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기보다는 억압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음식에 대해서 깊은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즐거움에 대해 반역할 것이다. 결국 아이는 리마콩을 먹는 것이 멀리 떨어진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심리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괴롭힌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직면하는 고통에 비하면 자신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단의 난민들에 비하면 내가 이혼한 것쯤이야 별거 아니잖아?” “불치병에 걸린 사람에 비하면 내가 실직한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통의 크기를 재는 것이 자비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겠으나, 자기 자신도 자비의 범주에 포함시켜야만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통찰을 스스로를 나무라는 데 사용한다. 스스로를 불행하게 느끼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불행할 자격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통찰을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자신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도 문제가 된다. 잊지 마라.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위와 같은 사실들 그리고 행복을 찾기 위한 다른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붓다가 왜 자신의 수행은 수행이 아니라고 말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의 말은 명상하고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챙기며 수행을 빨리 하면 할수록 그에 따른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우리 삶의 좋은 것들에 감사하고 우리가 먹는 양식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명상하는 일도 좋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기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