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교황과의 절교를 선언한 마틴 루터
루터는 개혁운동의 영도자로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는 독일 광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루터의 부모는 생각이 단순하고 교회의 의식에 구애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부모의 성품을 타고나서 강직하고 과감하며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이었다. 또한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고 방탕하지 않았다.
루터가 스물한 살 때의 일이다.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날 저녁, 집에서 법학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을 가르며 천둥 번개가 쳤다. 법학생이었던 그는 신에게 살려달라고 빌며, 살려준다면 수도회에 들어가서 신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맹세했다. 두 주 후, 그는 약속을 이행했다. 수도회에서 신학학사 학위를 받은 뒤 신학연구와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면서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어느 날 루터는 수도회를 대표하여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스러운 계단’을 무릎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렇게 하면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대기에 다다르기 전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성경 말씀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는 고행을 하면 거룩해진다는
미신을 과감히 버리고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왔다.
당시 로마 교황청은 독일 교회에 멋대로 세를 징수하고 성직자의 직분 임명권에 수시로 간여하는 등 부패가 만연했다. 그래서 착취당하던 농민과 도시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루터는 교황청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 나무문 앞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고 교황청의 죄상을 폭로했다. 그는 반박문 제62조 “교회의 참된 보화는 하느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다”를 시발점으로 개혁을 일으켰다. 1520년에는 세 편의 논문을 써서 학술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논문들을 종교개혁의 구심점으로 삼았다. 이에 교황은 루터를 교회에서 추방하라고 명했으나 루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텐베르크 대학의 사제들을 이끌고 교황의 지시문과 교회의 법전을 불태우며 교황과의 절교를 선언했다.
루터는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그가 번역한 문장은 매끄러워 낭독하기에도 좋았다. 1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노력한 결과 『신약성경』을 완역했고, 일생 동안 35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교리를 설명한 책은 대중의 언어로 집필하여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교제로 삼았다. 그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성경의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후대를 위해 기독교 복음신학의 기초를 튼튼히 다졌다. 그는 독일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고향 아이슬레벤에서 병으로 타계했다. 그러나 그가 이끈 종교개혁운동은 독일과 북유럽을 넘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