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개가 우리보다 행복한가

 

개가 노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개는 무엇이든 즐긴다. 먹이와 물을 주면 기뻐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귀 뒤를 긁어주면 행복해한다. ‘산책’이란 말만 들어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개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행복한 것 같다. 반면 우리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의 뇌는 크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신진대사의 3분의 1이나 사용해야 한다. 뇌는 우리가 생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딱딱한 두개골에 싸여 있다. 우리는 이 큰 뇌로 숫자와 단어, 생각과 은유 같은 상징들을 만들어내며, 이런 상징들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로 여기므로 때때로 놀라운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징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망각하면 피해가 그치지 않는다. 상징들을 실재로 간주하는 성향 때문에 누가 특정한 말을 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취하면 우리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슬픔, 화, 부끄러움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이 일어나며, 때로는 너무 속상해서 그런 감정이 몇 시간 혹은 며칠간이나 지속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마음속으로 동일한 상징들로 되풀이되면서 지속된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녀가 내게 그렇게 대하다니.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가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우리는 논리적인 반론과 응수를 생각해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런 시도는 상황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우리를 더 깊은 덫에 빠뜨린다. 우리가 상징과 실재를 혼동할 때 우리의 고통과 불행은 더 커질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붓다의 면전에서 욕을 해댔다. 붓다가 가만히 있자 그 사람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고 더욱 열을 내며 욕을 퍼부었다. 마침내 그 사람은 제풀에 지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훗날 제자들이 그런 지독한 모욕에도 어떻게 침착할 수 있었는지 붓다에게 물었다. 붓다는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것을 준 사람이 도로 가져가야 한다” 하고 말했다. 붓다는 그 사람이 사용한 상징과 말에 화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욕설은 소리였을 뿐이다. 소리는 바람처럼 스쳐지나갈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상징들을 조작하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관해서 생각하게 된다.
과거나 미래에 관해서 생각하는 건 일종의 상징적 과정이다. 이는 물론 과거를 돌이켜보고 이해하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미래를 예측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나 미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물을 움켜쥐려는 것과 같다. 삶 자체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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