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깨우침을 얻게 된다면

 

불완전성에 대한 저항은 단순히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은 주로 우리 자신, 즉 현재 우리와 우리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지고지순한 열망조차도 현재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된다. 우리는 마음을 다스려 흠 없이 완전하고 진실한 상태에 이르게 될 때에 모든 것이 좋아지고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함에 대한 추구는 화를 잠재적으로 키우는 원인이 되어 언행에서 드러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만과 근심이 생겨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깨우침이 이런 개념의 궁극적 형태가 된다. 하지만 깨우침을 포함하여 이런 모든 개념은 마음을 열고 현재의 순간을 받아들이며 의식하고 살아 있는 우리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붓다는 자신의 깨우침에 대해 심오한 말을 남겼다.


 

나는 월등하고 완전한 깨우침에서 아무것도 얻은 바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월등하고 완전한 깨우침’이라고 한다. (Watts 1957, 45)


 

대단히 놀라운 말이다. 붓다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의 뜻을 헤아려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붓다는 깨우침이란 하나의 아이디어나 개념에 불과한 것임을 우리가 알기를 바랐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깨우침이란 아이디어는 단지 아이디어일 뿐 실재와는 거리가 멀다. 불교에서 깨우침을 얻은 사람의 경지를 열반이라고 하며 이는 ‘절멸’을 의미한다. 우리 존재의 절멸이 아니라 우리 고통의 절멸을 의미한다. 사물의 경이로운 본질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개념과 생각의 절멸을 의미한다. 이것을 붓다는 ‘본질(진여眞如)’이라고 했다.
심리적인 완전함과 웰빙이란 개념도 우리에게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슬픈 생각과 감정을 지워버리려다가 더 깊은 슬픔에 사로잡힌다. 슬픈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데 사로잡혀 슬픈 생각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슬픈 생각을 모두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이것은 실패했다는 감정을 부추겨 오히려 더 슬퍼지고 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깨우침에서 아무것도 얻은 바 없다는 붓다의 말은 깨우침이 다른 경험의 영역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산스크리트어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바하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는 『반야심경Heart Sutra』의 구절로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가자, 아 깨우침이여!”란 의미다.(틱낫한, 1988, 2) 이런 의식은 강 너머로 간다는 뜻으로 전경이 배경이 되고 배경이 전경이 된다. 깨우침이란 개인의 목표나 꿈을 비롯한 우리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다. 우리의 목표와 꿈이 훌륭하고 건전하며 합리적일지라도, 이것들에는 현재의 순간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깨우침, 행복 혹은 완전함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다른 세속적인 목표에 집중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으며 어떤 면에서는 더 좋지 않다.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선善이 더 위험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행복 사이에 무엇인가 다른 것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다그치면서 지나치게 무리하고 애쓴다. 찾는 것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무리한 노력은 평화에 반하고 그렇기 때문에 깨우침에도 반한다.
붓다는 깨우침을 다른 목표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표로 삼거나, 가장 정제된 개념조차도 하나의 개념임을 알지 못한 채 취한다면, 우리가 그 덫에 걸린다고 가르쳤다. 깨우침은 목표가 아니다. 깨우침은 불교에서 말하는 ‘목표 없음’ 또는 ‘목적 없음’(무원無願)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좀 더 현존하는 것이며, 욕망이나 혐오로 왜곡하지 않는 가운데 대상 그 자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복잡해지기만 할 뿐이다. 행복을 위해 마음챙김을 수행하지 마라. 붓다가 되려고 하지 마라. 그냥 지금 이 순간의 몸과 마음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불성이 빛을 내도록 하라. 이미 와 있는 행복에 다가가라. 얻는 것이 아니다. 붓다는 완전한 깨우침에서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완전한 깨우침은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한 깨우침은 분명 깨우침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을 획득하는 일이 아니다. 열반은 얻고 잃음의 영역 밖에 있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다. 이력서에 써 넣을 수도 없다. 이런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순히 현재의 순간을 늘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염원하는 모습이 현재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염원하는 순간 우리는 서서히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 그 순간에 이미 실제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인본주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이를 잘 설명했다.


인간은 현재의 자신인 동시에 염원하는 미래의 자신이기도 하다.(Maslow 1968, 160)


 

불교에서는 이를 우리 안에 불성이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영적 수행이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며 우리 자신을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나아가면서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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