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 이해하기

 

행복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특정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미래 지향적인 사고방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보다는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더욱이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으면서 다가올 행복만을 기다린다면, 행복은 점점 더 먼 미래로 멀어질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끝없는 기대와 거듭되는 좌절을 거듭하며 평행선을 달릴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목표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늘 기대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 지점에 이르지 못한다. 아름다운 산길을 걷는다고 가정해보자. 웅장한 산과 싱그러운 풀밭, 시원한 냇가와 잔잔한 호수 그리고 더없이 아름다운 나무들이 반겨주지만, 우리는 불행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이보다 더 빼어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사로잡혀 현재 우리를 둘러싼 빼어난 경치를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좋은 것들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을 받아들일 때,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따뜻하고 긍정적이며 놀라운 치유의 체험을 하게 된다. 산책할 때 들리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하지만 내가 현재에 충실하고, 마음이 열려 있을 때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식탁 위에 있는 백장미는 놀 랍도록 아름답더라도 실제로 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행복의 추구가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 우리는 평생 행복해지려고 애쓰지만, 이런 노력은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행복을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의 삶과 자유, 그 밖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빼앗고 바로 여기에 있는 삶의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자기 꼬리를 쫓는 개처럼 우리는 빠르게 반복되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우리는 목표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일상적인 평일 아침을 생각해보자. 요란한 알람시계가 우리를 잠에서 억지로 깨운다. 우리는 몇 분만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기며 버틸 것이다. 그러나 이내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모두 검토한다. 처리해야 할 목록을 하나 둘 떠올릴수록 그날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피곤해진다. 날마다 변함없는 아침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의 따스함도, 아침을 깨우는 커피의 향긋함도 느끼지 못한다. 샤워를 하는 동안 우리는 머릿속으로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한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머릿속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하다. 차를 몰 때는 혼잡한 교통 상황 탓에 찬란한 아침 태양과 황홀한 구름, 싱그러운 나무와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직장에서는 더 고단하다. 회사에 들어서면서부터 서둘러 업무를 처리하고 또 그 다음 업무로 넘어가느라 우리는 이 순간에서 종종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한 업무를 다 마치기도 전에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미리부터 생각한다. 그리고 걱정을 앞세운다. 오늘 그 업무를 모두 다 처리할 수 있을지, 업무평가를 잘 받을 수 있을지, 상사와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할지 걱정이 많다. 하루가 속히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기진맥진해 있지만 일 때문에 지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앞질러 초조하게 미래로 달려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퇴근길에 운전을 하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정작 집에 도착해서도 우리는 이 순간에 충실하지 않다. 저녁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생각하거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완전히 깨어 있을 수도 살아 있을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습관처럼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우리는 흔히 그것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행복해지려면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과 커피 그리고 아침의 따사로운 햇볕 앞에 온전히 존재해야 한다. 근심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말아야 한다.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업무를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해야 한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라. 그리고 주어진 저녁 시간을 즐기면 된다.
어렸을 적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었고 비와 물웅덩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때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둘러! 학교에 늦겠다.” 물론 늦지 않고 시간을 지키는 일은 어린이가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이런 경험은 습관적 에너지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미래로 달음질치도록 몰아넣는다. 성인이 된 후 우리는 아침식사를 즐기지 못한다. 물웅덩이는 길을 가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불교의 우주론에서 육도六道에는 ‘배고픈 망령’(아귀餓鬼)이라는 생존 상태가 있다. 배고픈 망령은 배불뚝이에 탐욕스러운 식욕을 가졌지만, 입과 목구멍은 바늘구멍처럼 좁아 제대로 먹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빼어 닮았다. 우리는 원하고, 원하고, 또 원한다. 우리는 끝없이 원하며 결코 만족을 모른다. 풍요로운 선진국에 살면서도 죽기 살기로 더 많은 것을 원할 뿐이다. 현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가 가진 것보다 현재를 받아들이는 능력과 더 관련이 있다. 행복이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쉬는 법을 배우고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도록 그 작은 입과 목구멍을 완전히 열어젖히는 일이다. 행복은 한마디로 현재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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