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행복은 가능하다
고속도로에서 본 광고판은 행복이 우리 외부에 있다는 또 다른 메시지도 암시한다. 우리가 오직 좋은 물건만을 사용하거나 소비하면, 좋은 사람들을 사귀고 만나면, 좋은 직장을 구하면, 좋은 심리요법을 찾으면, 돈이 충분하면, 그 밖의 여러 조건들이 갖춰진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물론 어떤 일은 즐겁고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바탕에 깔려 있는 ‘우리 자신 밖에서 행복이 발견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먼저 행복은 늘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이내 행복해질 수 있다. 다른 무엇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곳에 갈 필요도,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다른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행복은 매우 단순하다. 행복을 어렵게 하는 건 복잡하게 생각하려는 우리의 성향이다.
행복은 단순하다. 궁극의 진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예수의 말씀이나, 하느님께서 선지자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느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하고 믿지 못한다. 힌두교 현자인 라마나 마하르시는 말했다. 모든 종교는 사람들이 정교하고 매력적이며 난해한 것을 찾기 때문에 생겨났다.(Mitchell 1991, 147)
온갖 종류의 복잡한 문제를 덧붙여야 하고 반드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하며 특정한 규칙을 따라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근본 진리를 모호하게 만들며 때로는 번뜩이는 깨우침의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 행복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종교만이 아니다. 우리는 갖은 방법으로 행복을 복잡하게 만든다. 행복을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행복을 찾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오히려 우리 자신이 훼방꾼이 되고 있다. 행복은 늘 가능하다. 이 말은 바로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행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란 없다. 무엇을 바꾸거나 다른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바로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이란 늘 가능한 것이므로 정녕 해야 할 질문은 당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우파니샤드(2장 참조)가 말하듯이 기쁨은 만물이 지닌 근본 본성이므로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행복에 관한 검증되지 않은 개념을 비롯한 장애물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행복이 가능해지는 방법을 익히면 이런 장애물들은 사라진다. 우리는 바로 당장,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행복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감관과 능력을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는 멋진 형태와 색깔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눈과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 귀가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도와주고 훌륭한 일을 얼마든지 해내는 두 손도 있다. 산책하는 즐거움을 주고 걸음마다 기쁜 마음으로 지면과 교감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발과 다리도 있다. 그리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언어 능력을 지닌 우수한 지능도 있다. 이런 감관과 능력은 이미 기쁨의 엄청난 원천이다. 이 중 어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있더라도 나머지 능력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배운다면 행복의 풍요로운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이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해지는 능력은 우리 내면에 이미 존재한다. 행복은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고 좋은 인맥이 있으며 잘생긴 외모를 갖춘 그런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통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행복은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복은 늘 가능하므로 바로 지금 행복해질 수 있다. 사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살아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뿐이다. 지금이 바로 생명이 존재하는 시간이다. 과거 어떤 시점에서는 행복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과거는 지나갔다. 행복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시원한 물 한 잔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물 마실 시간은 지금뿐이다. 어제의 물은 마실 수가 없다.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바로 지금 우리와 우리 내면과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미래에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미래란 없다. 미래는 결코 여기에 없다. 내일의 한 잔 물을 우리가 즐길 수 없듯이 미래에 행복을 미리 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른다면 미래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미래에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신선한 물은 과거는 물론 미래의 한 잔 물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는 모두 구름이나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는 공허한 허상에 불과하다. 과거는 망령이고 미래는 꿈이다. 생명의 물은 우리 앞에 구체적이고 생생한 실재로 존재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에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만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심오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런 통찰을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런 통찰을 확실히 그리고 완전히 이해해야만 행복의 길로 진입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삶이 우리에게 인식되고 우리 또한 삶을 진정으로 체험할 수 있다. 현재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피상적으로 단지 하나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인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행의 개념으로, 삶의 한 방식으로 생각해야만 이 신선한 물을 마시는 체험에 이를 수 있다. 현재에 우리가 충실할 때, 우리의 의식이 이전에 있었던 일이나 이후에 일어날 일에 허비되지 않을 때, 우리가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붓다의 유일한 목표는 고통에서 헤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종교를 창시하거나 철학을 세우는 일 또는 형이상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인간의 고통을 끝내기만을 바랐다.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행복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 가운데 붓다의 깨우침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행복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