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신학계의 주목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46 는 북아프리카(지금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도의 하급관리로 재산이 많지 않았다. 그는 게으르고 편하게만 살려 했고 세속에 연연하는 사람이었으나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고상한 진리를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선과 악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는 17세 때 만나 교제한 여자와 14년 동안 동거하고 사생아를 낳았다. 19세 때 키케로의 저작을 읽은 후 진리 탐구에 강력하게 끌려 그것을 생애의 유일한 가치로 여기고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9년 동안 마니교47 를 신봉하며 학문 연구와 제자 육성에 힘썼다. 카르타고에서 희극 한 편을 써서 작가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니교의 교리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고, 마니교 지도자를 찾아가 토론을 벌였지만 그들은 교리와 관련된 설명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국 383년에 로마로 떠났고 이듬해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밀라노에서 새로운 회의주의 철학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때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갈등이 심했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정략결혼을 준비했지만 상대 여자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동거녀와 관계를 청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여자와 동거하려고 했는데 이는 그의 생애에 크나큰 오점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48 의 전기를 읽다가 플로티누스가 노년에 기독교로 귀의했다는 대목에서 흥분했고 모든 선과 진실의 근원이 하느님이란 것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교회의 권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한 고상하고 성결한 삶을 사는 이집트인 수도사의 이야기를 듣고 지식인이면서도 성적 노예로 살고 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자책하면서 화원의 나무 아래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때 갑자기 아이와 같은 음성이 들렸다.

 

“들고 읽어라.”

 

깜짝 놀란 그는 울음을 그치고 『신약성경』을 다시 읽어 보았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3:13~14).

그는 하느님에게 받은 능력으로 죄악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편안해졌다.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개하고 정부와 헤어졌다. 친구와 함께 산에 은거하며 철학을 연구하고 많은 논문을 썼다. 제자를 양성하지는 않았다. 그는 친구와 아들을 데리고 밀라노로 가서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113편의 책과 5백여 편의 설교문을 작성했으나 그의 학식은 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단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신학에서 보인 그의 재능은 과히 천재적이었고 그래서 늘 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은 크게 신학, 경전 해석, 윤리, 철학, 자서전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참회록』, 『신국론』, 『삼위일체론』이 있으며, 그중 『참회록』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쓴 책이다. 『참회록』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행하는 신비로운 일과 은혜를 자신의 경험으로 직접 증명한 것으로 인간이 신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훗날 종교적 경험을 저술한 책의 전형이 되었고 세계적인 명작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국론』은 교회사와 관련된 철학서로 총 22권이며 아우구스티누스가 14년에 걸쳐 완성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를 강력히 옹호하기 위해 이교도와 로마의 애국주의를 반박하고 지상의 나라와 하늘나라에 대한 기원과 발전 그리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지상의 나라는 자애自愛와 하느님에 대한 멸시로 반드시 쇠락할 것이고, 하늘나라는 신의 사랑을 근본으로 반드시 흥성하여 영원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사상은 특히 로마 가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