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종파를 넘어선 교회일치운동

 

개신교의 많은 교파들이 종교 박해와 차별에 맞서 싸워 마침내 종교의 자유를 얻어냈다. 이 과정은 네덜란드 혁명과 청교도 혁명의 기점이 된 유럽과 미국의 사회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 청교도들은 박해를 받았지만 혁명을 일으켜 1688년에 모든 교파의 권리는 평등하다는 원칙을 이끌어내고 고대하던 신앙의 자유를 공인받았다. 유럽은 16세기부터 개신교의 교파들에게 합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식민지를 개척했고, 모든 교파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건국 이념에 포함시켰다. 16세기 후반부터 북아메리카의 개신교에서는 장로교, 회중파교40 , 침례교41 , 감리교, 퀘이커교42 등을 비롯한 새로운 교파가 오늘날까지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건주의운동, 대각성운동, 기독교 사회주의운동, 사회 복음주의운동, 근본주의운동에서부터 20세기에 일어난 교회일치운동에 이르기까지 각종 종교 운동이 일어났다. 신학에도 각종 학파들이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의 이성주의, 낭만주의, 관념주의,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실존주의, 경험주의, 기독교 현실주의, 과정신학, 세속신학, 희망신학 등이 주요 학파들이다.
16세기 이후 동방정교회는 러시아에서 지위가 점차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차르43 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17세기에는 교례와 의식을 개혁했으며, 18세기에는 표트르 1세가 교구제를 폐지하여 총대주교구 제도로 대체했다. 19세기 이후에는 동방정교회에 속한 각 국왕들이 연이어 독립 교회를 형성하여 각 나라의 정교회가 서로 구속하고 지배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근대 기독교는 유럽에서 각 대륙으로 뻗어나가 모든 나라에 전파되었다. 20세기부터 각 나라의 기독교에서는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려는 교회자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종파를 넘어 교회일치를 실현하기 위한 연합운동이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