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이득과 손해 사이의 저울질

실제로 매우 구체적인 일들에서 이득과 손해를 따져볼 수 있다. 예를들어 이런 점은 유익하고 저런 점은 해롭고, 몇 퍼센트 이득이고 몇 퍼센트 손해인지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이익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유가에서는 수단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반면 도가에서는 전체적인 동향을 강조해 운명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때는 삶이 시류에 그냥 함께 휩쓸려 간다. 개혁개방 30년 이래 중국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거뒀다. 이것은 개인의 힘이 아닌 시대의 힘이요, 개혁개방이라는 정책을 선택한 덕분이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개인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개혁개방 후와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시대의 차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대적 조류의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되며 그 속에서 개인은 얼마만큼의 이익을 거머쥘 수 있을까? 설사 다른 사람이 당신 앞에 놓인 이득을 보았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당신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유가에서는 이익을 보면 그것을 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고 했다. 맹자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가르침을 펴는 것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것이 자신의 이익으로 이어져서 한 건 아니었다. 유가에서는 벼슬을 해서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시대 중기, 장자는 유가의 가르침과 달리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해 자기 삶의 행복을 찾는 이들을 더 많이 목격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백성에게는 재난이 된다. 이는 사람들이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가의 가르침을 배워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장자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로 이를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원숭이를 키웠다. 하루는 사료값이 부족했는지 원숭이들과 상의를 했다. 앞으로는 사료로 주는 밤을 아침에 석 되, 저녁에 넉 되를 주겠다며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며 싫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꿔서 아침에는 넉 되, 저녁에는 석 되를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좋아하며 승낙하는 것이 아닌가.
장자가 이 우화를 들려준 의도는 무엇일까? 원숭이가 셈에 약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아침에 석 되, 저녁에 넉 되이면 모두 일곱 되이고 아침에 넉 되, 저녁에 석 되여도 모두 일곱 되이다. 단지 분배하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원숭이들은 처음 제안에는 불같이 화를 내고 나중 제안은 흔쾌히 받아들였을까? 간단하다. 원숭이가 속은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원숭이보다 좀 나을까? 인생을 조삼모사에 빗대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젊었을 때에 고생을 좀 하더라도 중년 이후에 형편이 나아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즉 젊은 시절에는 3을, 늙어서는 좀 더 많은 4를 얻는 것이다. 반대로 조사모삼朝四暮三은 어떨까? 젊은 나이에 성공하여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늙어서는 젊었을 때보다 조금 쇠락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개 후자를 더 원한다. 먼저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들 중요한 점을 잊고 있다. 어떻게 되든 총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인생을 긴 안목으로 보자. 평생 얼마를 얻고 얼마를 잃든, 결국 그 총합은 비슷하다. 당신이라면 초기에 많이 가졌지만 나중에 적게 갖는 쪽과 반대로 초기에는 좀 부족했지만 나중에 풍족해지는 쪽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총합은 같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 중 한 명은 젊었을 때 일찍이 자신의 뜻을 펼쳤는데 늙어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친구의 경우 먼저 4를 갖고, 나중에 또 4를 얻었으니 혼자서 온 이득을 다 챙긴 셈이다.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더 행복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한 사람이 순탄한 인생을 살았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신 이 모든 것을 외부 세계와 교류하는 데에 소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평생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만 바빠 정작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평생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즉 처음에도 3, 나중에도 3밖에 얻지 못하는 삶이다. 젊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늙어서도 형편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면 참 억울할 노릇이 아닌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이럴 경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지고 자기수련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바로 이것이 삶의 가치를 결정해준다.
이번 장에서는 이해관계를 논하면서 본래 상대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했던 이득과 손해가 사실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지금 당장 눈앞의 큰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작은 손해를 감수한다거나, 혹은 당장의 작은 이득이 나중에 큰 화를 초래한다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모두는 전체적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다. 작게는 인간의 일생도 하나의 총체이고, 크게는 우주도 하나의 총체이다. 도가에서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서로 따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이해관계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말한다. 남에게 일어난 일을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도가의 높은 경지 중 하나다.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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