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유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의 융합

 

유학은 동중서 이후부터 자체적으로 영역이 분화되기 시작했고 정치유학, 학술유학, 민간유학 세 영역으로 나뉘었다. 정치유학은 무제 이후의 역대 황제들이 모두 채택한, 유학과 음양사상이 융합된 사상이다. 무제 때부터 거의 모든 황제가 태산에 올라 하늘과 땅에 제사 드리며 하늘의 명을 받아 황제가 되었음을 백성에게 알렸다. 이때부터 황제를 천자라고 불렀다. 정치유학은 황제가 제위에 오를 때 가장 두드러졌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봉건제왕을 위해 존재했던 정치유학은 사라졌고 현대사회에서도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
민간유학과 학술유학은 정치유학이 처한 상황과는 완전히 달랐다. 특히 학술유학이 그랬다. 민간유학은 비교적 굴곡이 많은 운명이었고, 학술유학은 변수가 많았다. 학술유학은 공자, 맹자, 순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략 다섯 차례의 발전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는 ‘오직 유학만을 존중하라’라는 단계로 구체적으로는 공자, 맹자, 순자 3대 성인들의 시기다. 3대 성인 이후 많은 유학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외부에서 도가사상을 받아들였고, 또 어떤 사람은 불교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 학술유학의 두 번째 단계, 즉 유도호보형 유학이다. 유학과 도가사상이 상호 보완하는 이 유학은 위진魏晋 시기에 가장 두드러졌다. 위진시기의 유도호보형 유학은 유학과 도가사상이 상호 보완한 것, 유학과 불교가 상호 보완한 것 두 방향으로 분화되었으며, 둘 다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위진 시기에 현학20 의 많은 명인들과 사상가들이 유도호보형 유학에 속한다. 이후 중국에서 불교의 세력이 점차 커졌다. 당나라의 문학가 겸 사상가인 한유 등은 불교를 배척하고 반대했으나 불교는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기까지 했다. 이때 많은 사상가들이 유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불교에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불교는 추상적 사고 수준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송나라와 명나라 때의 많은 사상가들이 불교의 형이상학적 내용을 받아들여 유학을 보충했으며 이로써 유학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학술유학의 세 번째 단계는 삼교합일형 유학이다. 삼교합일형 유학은 유학, 도가사상, 불교의 사상을 하나로 융합한 것이다. 정주21 를 대표로 하는 이학파22 든, 육왕을 대표로 하는 심학파23 든 대체로 삼교를 융합하여 하나로 만들었다. 그러나 융합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정주는 이理를 강조했고 육왕은 심心을 강조했는데 이는 객관을, 심은 주관을 중시했다. 그러나 삼교합일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는데 명백한 문화 교류 의 결과였다.
학술유학의 네 번째 단계는 송나라 말부터 청나라 초기에 나타난 사교회통형 유학이다. 사교회통은 두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에 정통한 유학자들이 한 방향을 이루었다. 기독교는 중국에 유입된 후 명나라 말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유교, 도교, 불교, 기독교사상을 하나로 융합한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서광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인의 시각으로 기독교를 이해한 학자들이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중국만의 특색 있는 기독교가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가 이 네 가지 학설을 유기적으로 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교회통은 실패했다.
또 다른 방향의 사교회통은 유불선과 청淸의 융합이다. 여기서 말하는 청은 오늘날의 이슬람교로 당시에는 청진교淸眞敎로 불리었다. 이슬람교가 중국에 유입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이슬람교를 중국으로 전파한 사람들은 대부분 상인이었다. 아랍 상인, 특히 페르시아 상인과 터키 상인이었다. 그들은 상업에 집중하느라 문화 교류를 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몇백 년 동안 이슬람교는 중국에서 신앙인만을 대상으로 전파되었고 중국문화와 융합되지 못했다.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에 이르자 이들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터키인의 후손이 점차 중국 사회에 융화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어떤 이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갔다. 특히 회족24 에서 걸출한 인물로 뽑히는 이지는 아버지가 무슬림이었다. 이지 외에 유지, 왕산여, 마복초 등이 전도유망한 사상가들이었고 이들은 유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를 아주 정교하게 융합했다. 뿐만 아니라 유학의 기본 개념으로 이슬람교의 일부를 해석하여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그중 왕산여는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유학사상을 해석하여 『청진대학淸眞大學』을 썼는데 이 책은 미국 하버드 대학 연경학사燕京學舍 학사장인 두위명의 지도반에서 영어로번역되기도 했다. 『청진대학』이 출판된 후, 미국 사회에서는 명나라 말과 청나라 초의 이슬람 사상가들 중에 추상적 사고력이 높은 학자와 사상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