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vs 예수 가라사대(도서출판 지와 사랑)

“용이 어린 양에게 길들여진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은 겨우 몇백 구절로 『논어』에 기록된 공자의 말씀보다 적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천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논어』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약성경』의 출판 부수는 그 밖의 베스트셀러들을 모두 합한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서양으로 뻗어나간 기독교는 현대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럽과 북미에서 크게 발전했다. 크리스천에게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은 일단 받아들이면 생명이 된다.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일단 소통하게 되면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며, 온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신을 경배하는 것이고, 신과 동행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중국에 광범위하게 전파된 건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일부 중국인은 “용이 어린 양에게 길들여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용은 중국이고 어린 양은 예수다. 기독교의 빠른 전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국의 유학이 당면한 과제다. 우선 중국에 기독교가 전파될 때 겪은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교와 애카임교가 중국에서 실패한 것이 오히려 서양 교회의 전도에 불을 지폈다. 서양 교회는 중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중국과 기독교 사이에 해빙 무드를 조성하고자 한 최초의 선교사였다.
사비에르는 1506년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프랑스 파리 대학 성바바라 단과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같은 고향 사람 이냐시오 데 로욜라11 와 친구가 되었다. 로욜라는 늘 사비에르에게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등의 『신약성경』 구절을 들려주었다. 사비에르는 예수회의 명을 받들어 인도 등 동양으로 간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다. 사비에르는 1541년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동양 선교를 시작하고 인도의 중심 지역인 고아주와 연이어 일본 규슈 가고시마 현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들 지방에서 「통회기도」, 「고백기도」, 「십계명」, 「주님의 기도」, 「성모송」, 「성모찬송」 등의 기도문을 낭독했다. 사비에르가 가고시마 현에서 선교할 때 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인이 물었다.
“당신들의 종교가 진리라면 모든 지혜의 근원이 되는 중국인은 왜 그
것을 들어보지 못했을까요?”
사비에르는 이때부터 먼저 중국인을 크리스천으로 귀의시켜 유학문화권 전체에 영향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중국 선교를 결심하고 1552년 8월 말 광동의 상천도에 상륙했을 때는 명나라가 외국 배의 정박을 금지시키는 해금 조치를 내린 상황이었다. 그는 중국의 큰 벽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묘책을 궁리하며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밀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도와주겠다던 중국인 상인은 망설이면서 끝내 오지 않았고, 사비에르는 심신이 지쳐 그해 말 열병으로 급사했다. 죽기 전 그는 중국을 향해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딱딱하게 굳은 돌덩이야, 돌덩이야, 언제쯤 틈을 내어주겠느냐!”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비에르가 급사한 그해에 이탈리아에서 마테오 리치가 태어났다. 리치는 30년 후 중국에 가톨릭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중국 의상을 착용하고 중국 모자를 쓰고 별다른 고생 없이 딱딱하게 굳은 돌덩이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서양인이 고난이라고 부르는 선교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