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선과 악에 관한 풀리지 않는 의문

 

선과 악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에서는 선악을 구분하며 백성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선과 악의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으로 나뉜다. 외적인 것은 객관적 기준을 제시해 따르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일한 외적 표현방식으로 표출되더라도 내적인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이럴 경우 상황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전에 만났던 교장선생님 한 분이 생각난다. 그분은 학생들에게 시험 볼 때 부정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라고 자주 당부하셨다. 한 번은 내가 수업시간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교장선생님이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고 수차례 당부하시는 걸 보니 여러분이 평소에 부정행위를 많이 하나 보군요.”

그러자 학생들이 대답했다.

“네.”

정말 정직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왜 부정행위를 하죠?”

학생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다른 애들도 다 하니까요.”

사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책임으로부터 늘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또 물었다.

“부정행위가 잘못이라는 걸 모르나요?”

그러자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부정행위가 잘못이라기보다는 부정행위를 하다가 걸리는 것이 잘못이겠죠.”

정말 큰 문제다. 부정행위 자체가 잘못된 행위가 아니라 부정행위를 하다 걸리는 것이 잘못이라니. 결과를 선과 악의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봐도 될까?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안 걸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한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아무에게도 발각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단 말인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내 오랜 친구 중 하나가 한밤중에 운전을 하고 있었다. 새벽 1시경,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빨간불이 켜진 것이 멀리 보였다. 차를 세워야 할지 그냥 지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새벽 1시에 사람이 어디 있겠어?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됐어, 그냥 무시하자.’ 그런데 신호등을 막 지날 때 뒤에서 경찰차가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경찰이 차를 세우고 물었다.

“빨간불 안 보여요?”

“봤습니다.”

“그런데 왜 안 서고 그냥 갔죠?”

“경찰은 못 봤거든요.”

이게 무슨 뜻일까? 경찰이 있을 때는 반드시 교통신호를 지키라는 뜻일까? 아니다. 문제는 경찰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신호를 무시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요행을 바란다. 비단 현대인만이 그런 건 아니다. 예전부터 그래 왔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TheRepublic』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목동이 교외에서 양을 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진이 발생해 땅이 갈라졌는데 그 아래에 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큰 관을 하나 발견했다. 관을 보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목동은 제왕의 무덤이라고 확신했다. 신이 난 목동이 서둘러 관을 열어보니 안에 해골이 하나 있었는데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반지를 본 목동은 이제 부자가 되겠구나 싶어 얼른 그 반지를 빼서 자기 손가락에 끼었다.

당시 그리스는 인구 수만 명 규모의 도시국가였다. 그리스에서는 각종 모임이 잦았는데 하루는 국왕이 목동들을 모두 모이게 했고 그 목동도 모임에 참석했다. 한참을 듣다가 지루해진 목동은 끼고 있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반지의 알을 자기 쪽으로 돌렸을 때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흔들고 춤을 춰봤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반지의 힘으로 투명인간이 된 것이었다. 다시 반지를 원래대로 돌리자 그는 다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됐다. 이 사실을 안 그는 나중에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과학이 지금처럼 계속 발달한다면 머지않아 먹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약이 발명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은 이러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변한 사람들 가운데 80%가 은행을 털겠다고 했다. 내가 훔치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테니 말이다. 극히 단순한 생각이 아닌가. 그러므로 선과 악의 기준을 내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외적인 요소만을 적용할 경우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옛날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몸가짐을 바로하고 언행을 삼가는 신독愼獨을 강조했다. 즉 누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더욱더 마음에 거리낌 없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노자와 장자는 선악의 기준이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보았으므로 선행보다는 선심을 더욱 중시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자선활동을 도가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봐야 옳을까? 그리고 노자는 왜 선인이 악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을까?

 

저자소개: 푸페이룽 傅佩榮
1950년에 태어난 푸페이룽은 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학 철학박사이다. 타이완대학 철학과 학과장 및 철학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벨기에대학, 네덜란드 레이던대학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현재는 타이완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푸페이룽은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말솜씨를 가진 교수로, 타이완 『민생보民生報』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교수로 선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교육부에서 수여하는 우수 교육자상, 『성공한 인생成功人生』으로 타이완 문화예술 분야 국가문예상, 『천론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해석儒道天論發微』으로 중정中正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현재까지 타이완에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등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특히 전통 경전 연구에 몰두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고정관념을 탈피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역경』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였으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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