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카르멘 하라의 ‘움켜쥔 자아 풀어주기’
인간은 ‘우주’라 부르는 전체의 한 부분이며,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
는다. 인간은 일체의 다른 존재들과 분리된 것처럼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데, 이는 의식이 만들어낸 일종의 시각적 환상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이 지구상의 모든 개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유한한 개별자인 동시에, 더 큰 우주적 의식의 한 부분을 지닌 영원한 영혼이다. 우리가 일체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후자에 눈뜨고 신성함과 회복의 힘을 지닌 모든 존재와의 연결고리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신적인 힘과 우리를 지켜주는 천사, 우리를 돌보는 영적 존재, 우주와 자연, 모든 인간과 생명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라도 이 개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들은 그 부름에 답할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달으면 우리는 성취감과 조화 그리고 용기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또 우리가 자아에 사로잡혀 끝없는 공포에 시달리느라 깨닫지 못했던 창의성과 기회,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오로지 물리적 자아에만 집착하고 일체감을 모른 척한다면(좋은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이는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이 잔인하고 매정한 세상에서 길을 잃고 외롭게 헤맬 것이다. 다시 말해 자아가 의식을 지배함으로써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옥은 당신이 신으로부터 그리고 신의 현현顯現인 만물과의 신성한 연결고리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거짓된 관념에서 비롯된다. 문학작품이나 종교에서 지옥은 죄를 지은 영혼이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저주받으며 사는 곳으로 묘사된다. 물론 엄청난 상상과 비유를 동원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지옥은 실제로 존재한다. 우리가 우주라는 거대한 의식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자아가 모든 행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둘 때 지옥이 탄생하는 것이다.
자아Ego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나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개별자라고 느끼므로 자아가 있다.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느낀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에 침잠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자아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자아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스스로가 어떤 점이 특별한지 볼 수 있게 해주고, 유한한 존재인 자신의 안전과 생존에 공헌한다. 만약 자아가 없다면 자신을 돌볼 능력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자아는 우리에게 핵심적인 요소다. 하지만 자아가 유일한 정체성이라면 또는 의식을 온통 지배한다면 문제가 있다. 일체감은 균형에 관한 것이어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정체성 사이의 균형도 한몫을 담당한다. 자신이 삶이라는 거대한 직물 속에 짜인 영원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자아는 우리를 끔찍한 단절 상태로 이끈다.
우리의 자아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비관적인 목소리를 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비이성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고유한 기억과 생각, 관념과 재능을 지닌 개체가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의 의식이 우주적 의식에 완전히 지배당하면 어떡하지? 자아는 이런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의 자아는 존재의 개별적인 면이 영원한 의식과 언제나 함께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생의 동반자를 처음 만났던 순간의 떨림과 사랑에 빠졌을 때의 느낌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죽는다고 해서 그런 의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종종 조언을 요청하는 당신의 사려 깊은 성향이나, 친구들이 낙담하여 기운이 필요할 때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당신의 유머 감각은 그대로 유지된다. 당신이 일체감을 깨닫고 자신의 의식이 집단의 의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낀다 해도, 당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아에서 비롯된 두려움은 비이성적이다. 당신은 자아와 더 큰 전체 간의 아름다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은 모두 빛을 내뿜으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런 균형을 찾으면 자아 때문에 생겨나는 불안을 잠재우고 일체감을 감싸 안기가 더 쉬워진다.
자아의 목적
자아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생존이다. 인간은 강력한 생존 본능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그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인류라는 종으로서의 발전 초기에 인간은 험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야 했다. 직관과 이성적 능력을 동원해 인간은 도구와 불 그리고 사회적 유대라는 생존 수단을 찾아냈다. 이를 통해 위험과 죽음을 더 쉽게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위험이 닥치면 살아남기 위해 재빨리 반응할 수 있는 신체 구조를 갖추어야 했다. 그 결과 인간의 뇌는 위험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부교감신경을 작동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fight or flight’ 둘 중 하나로 반응하도록 형성되었다. 위험하다고 느껴지는(그 위험이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황 앞에서 인간의 몸은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는 반응을 보인다. 호흡은 얕아지고 두뇌의 명령에 따라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관으로 분비된다. 이 모든 생리학적 반응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재빨리 달아나 숨을 곳을 찾든지 아니면 싸우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직관이나 인식 능력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사용되도록 요구받는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빙하기를 견딘 인간의 정신력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싸우거나 도망치거나’라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정말로 절박한 상황에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번개처럼 움직여야 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당신도 닥쳐올 위험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을 것이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는 일상에서 거의 사용할 일 없는 비상사태이며 일시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행동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제작된 광고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당신의 자아는 위험을 느끼고 몸도 그에 따라 반응한다.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이 발동하여 마치 폭풍 속에 내던져지거나 야생동물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의 증세를 연쇄적으로 일으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험’은 그저 당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의 사슬을 끊고 불안함에 굴복하는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의지의 힘을 작동시켜보면 어떨까? 삶에 스트레스가 얼마나 줄어들지 상상해보라.
자아는 허약한 척 자주 엄살을 피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자아가 당신의 의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면 마음은 공포를 정당화하고 부풀리는 생각들로 가득 찰 것이다. 고객들에게 인지 요법을 사용할 때 나는 중요한 요소를 꼭 상기시킨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조그만 신호라도 보이면 우리의 마음은 금방 안전하다는 의식을 버리고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일러두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이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과거의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리거
나 미래에 닥칠 상황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도처에 ‘위험’ 요소가 깔려 있는 듯 보인다! 그 결과 당신의 몸도 ‘싸우거나 도망치거나’의 자세를 유지하며 좀처럼 진정되지도, 안정되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찾아오는 걱정과 두려움, 분노가 당신의 건강과 행복을 서서히 좀먹는다. 게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 장애나 소화 장애, 만성 통증, 암 같은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런 해로운 증상들은 자신의 자아를 점검할 때만 멈출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