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은 미지에 대한 공포를 잠재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통과 관습에 매달린다.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고자 한다. 변화는 불안과 혼란을 불러오므로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너 미쳤구나! 인생은 더 나아질 수 없어!’라는 뿌리 깊은 두려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변화가 불러올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변화에 이끌리기도 한다.
두려움을 내려놓으면 미래를 믿을 수 있고 자신의 힘을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일체감은 알 수 없는 미래의 신비를 받아들이고 우리가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아무런 도움 없이 버려진 외톨이가 아니며, 혼자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할 필요도 없다. 나는 정부의 허가 없이 한 발자국도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곳에서 자란 까닭에, 미국으로 오겠다는 꿈 자체가 내게는 표면적으로 터무니없어 보였다. 내가 살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어릴 때 품었던 야망, 특히 언젠가는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는 꿈에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차라리 화성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게 낫지! 그런데 나는 내가 속한 곳에서 원하는 곳으로 갈 방법을 전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꿈을 계속 간직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하나님이 나를 도와 기회를 주시고 도와줄 이를 내려 보내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영적 능력 덕분에 그 꿈이 허황되지도 않고 내가 미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일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직관을 개발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일들이 지닌 신비로운 연관성을 깨닫도록 조언한다. 연결고리를 볼 수 있는 능력에서 오는 자신감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게 하고 싶다. 나는 종종 고객들에게 “이게 보이나요?” 아니면 “이게 이해가 되나요? 여기에 동의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내 직관뿐 아니라 그들의 직관에 귀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본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많은 고객들이 코웃음을 친다. 이성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내가 묘사하는 상황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몇 년 후 다시 나를 찾아와서 “믿지 못하시겠지만 당신이 옳았어요!”라고 인정한다. 물론 내가 본 것이 항상 실현되지는 않는다. 미래는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나중에 이에 대해 좀 더 설명하겠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던 미래가 실체로 다가오면 대부분은 상당히 충격을 받는다.
대개 사람들은 앞날에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일상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중요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지금부터 내 인생은 예상대로 될 거야’라는 오랜 믿음에 빠져서 살아간다.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때 대부분이 충격과 혼란에 빠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지의 세상에 대해 불편함을 덜 느끼는 방법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영적 존재가 항상 우리를 돌본다고 믿는 것이다(그렇다, 나중에 다시 좀 더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항상 영적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신성한 힘과 일체감 사이의 연결고리를 기억한다면, 당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신성한 힘은 당신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단계로 나아가야 할지 가르쳐준다.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마음을 용기와 믿음이 채우게 되고, 이제 당신은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기대하며 어렴풋이 내다볼 수 있는 능력마저 갖게 된다. 인생은 망망대해를 홀로 노를 저어 가듯이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신이 삶의 고비에 맞닥뜨릴 때마다 마치 신실한 친구처럼 신이 당신 곁에 함께할 것이다.
상실의 두려움과 마주하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기에 저항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포기해야 할 대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것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친구 하나는 화재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려서 아까운 물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잃어버리고 나니 오히려 해방된 느낌을 받는 물건도 있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물려준 가구라든지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가지고 있어야 했던 물건들에 상당히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물려준 보석함 없이도 엄마는 아직도 나와 내 삶의 한 부분에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저 지금까지 엄마한테 물려받은 물건들을 놓아주기가 두려웠던 거야. 엄마는 분명히 ‘대체 왜 그렇게 낡은 것들을 움켜쥐고 있니?’라고 말씀하실 텐데 말이지.”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 더 이상 필요 없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 매여 산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삐걱거리게 하고 내리누를 뿐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믿음이나 더 이상 우리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진정으로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를 갈라놓기만 하는 종교가 진정으로 필요한가? 진정한 부를 창출한다는 환상만 부추기는 복잡한 금융 시스템과 수많은 직업들이 정말로 필요한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제 시스템이나 분리에 열을 올리는 종교의 소멸, 현 감옥 시스템의 붕괴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를 뒤돌아보면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여겨졌던 많은 변화와 상실이 사람들에게 곧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정착된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던 이륜마차나 말의 시대는 끝났지만 우리는 이동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나라마다 개별적으로 사용하던 화폐가 대부분 폐지되었지만, 그렇다고 경제가 재앙을 맞지는 않았다. 미국에 존재했던 인종분리법은 폐지되었지만, 그 법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했지만, 우리는 그 속도에 어리둥절해 있느라 아직 제대로 결과를 볼 수조차 없다. 빠른 속도에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고통을 준 문제들을 해결할 가능성을 드디어 발견하고 환호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이제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 오래된 신념과 감정 그리고 행동 양식을 버리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남편과 결혼하고 미국 시민이 되면서 아무리 좋은 변화라 하더라도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상실이 뒤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힘들어한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며 새로운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친숙한 것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열고 신성한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창의성을 허용할 때 훨씬 더 나은 사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다. 신은 우주를 창조했다. 우리 인간은 신과 더불어 괄목할 만한 사회와 예술, 문화를 창조했다. 그러니 특별한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개인의 노력에 신이 왜 동참하지 않겠는가?
상실의 고통이나 새로움에 대한 적응을 두려워하면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신경학자들은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면 뇌에서 두려움과 관련된 부분으로 피가 몰려 낙천성과 창의성에 연관된 부분의 활동이 크게 제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려움이 우리가 꿈꾸고 상상하고 계획하는 능력을 닫아버린다. 또한 궁극적이고 혁신적이고 사랑이 충만하고 강력하고 신성한 힘이라 할 수 있는 신과 우리가 힘을 합쳐 창조해 나간다는 신성한 관념을 바로 두려움이 차단해버리기도 한다.
일체감은 두려움을 없애고 긍정과 창의성으로 우리를 연결해준다. 신이라는 존재 덕분에 사람들이 꿈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혼자 해결할 필요가 없다. 해결책이 무엇인지 몰라도 된다. 결국은 우리에게 해결책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풍요로운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도움의 손길을 확신하라.
그렇지만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당신도 맡은 일을 해야만 한다. 즉 꼭 쥐고 있던 자아를 느슨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다. 자아야말로 당신을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는 것이면서, 아울러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며 상처를 치유해주는 신성한 연결고리를 믿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내면의 변화를 방해하고, 원하는 삶을 상상하며 세상을 향해 실천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다음 장에서는 자아의 본질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자아를 조절함으로써 질주하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에 희생되지 않을 수 있는지 살펴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