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자신과 가장 동일시되는 존재인 니체의 광인이 물었다
프로이트가 1927년 『환상의 미래 l'Avenir de l'illusion』를 발표했을 당시, 많은 영국계 지식인들은 종교가 서서히 고사하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19세기 중반에도 매튜 아널드Matthew Arnold(1822-88) 같은 영국의 시인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고 초월적인 믿음에 종지부를 찍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아널드를 비롯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지식인들은 믿음이 완전히 소멸되는 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내기 위해 상당한 지적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니체도 이 문제를 우려했습니다. 그의 우려는 신의 죽음을 논한 『즐거운 학문 The Gay Science』에 잘 나타납니다. 니체 자신과 가장 동일시되는 존재인 니체의 광인이 물었습니다. “모두 살인자인 세상에서 어찌 편히 살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신성하고 가장 강력한 건 아직도 우리의 칼 아래 죽음으로 흘린 피를 소유하고 있다. 누가 이 피를 닦아줄 것인가? 우리를 깨끗이 씻어줄 물은 과연 존재하는가? 속죄의 향연과 성스러운 경기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의 이러한 행위가 정녕 위대하지 않단 말인가? 스스로 가치를 지닌 우리 자신들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는 것인가?”
『환상의 미래』는 포괄적인 무신론의 탄생에 대해 피상적으로 긍정합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종교와 가부장 중독 현상에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서구 종교의 본질은 근본주의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는, 지구 위의 생명과 우주 전체를 통제하는 신적 존재를 믿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근본주의는 종교의 심장으로, 그것은 아버지와 그의 힘이 모두 존재하던 초창기 상태를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상징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1947-)는 사람들 모두 자기 속에 ‘신-모양의 구멍’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프로이트가 그의 생각을 접했다면 분명 그 말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모든 ‘아버지 종교’의 중심에 근본주의가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왠지 미묘하고 자비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중력에 이끌리듯 아버지와 그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따른다고 지적했습니다.
근본주의는 사랑과 술 그리고 전제정치처럼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데, 그런 근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권위주의적 종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해답은 자신의 종교적 경험이 아닌, 윌리엄 제임스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에서 칭찬한 규격화된 체계 밖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프로이트의 시대 이후 영성이라 불리기 시작한 모호한 혼합물이 아닙니다. 프로이트가 추천한 건 가부장적 신앙이라는 마약을 완전히 끊는 것으로, 그것은 호전적인 무신론의 형태를 취합니다. 믿음의 힘을 초기 단계로 되돌리기 위한 해답으로 그는 어느 신도 믿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일단 신이 사라지기만 하면 개인은 지도자로부터 사회적 논란, 애국주의, 열렬한 수행, 이런저런 통치 관념까지 무수한 형태로 나타나는 신의 대리인을 경계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잔인한 독재자와 전제적 신들에게 복종하면서 자신들의 심리적, 유아기적 요구를 만족시킨다는 관점을 피하기 힘듭니다. 그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위한 건전하고 강력한 주체를 만들어냅니다. 프로이트는 가부장 콤플렉스, 전제적 정부와 전제적 종교라 불리는 것들 이면의 공포를 지적하고 왜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런 정부와 종교가 공공의 이익에, 심지어는 독재자와 이성을 잃은 전도자들의 이익에 명백히 위배되는데도 그것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독재자의 운명은 종종 무솔리니의 최후로 간단히 묘사됩니다. 그는 총탄 여러 발을 맞은 뒤 밀라노 광장에 매달리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