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하라의 『일체감이 주는 행복』(도서출판 知와 사랑)
부제: 나를 치유하는 신성한 연결고리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카르멘 하라 박사는 '더 뷰The view',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투데이 쇼Today show' 그리고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뉴욕 포스트The New York Post]를 비롯한 미국의 텔레비전 쇼와 언론 매체에 출연하는 유명 인사이며 심리치료학자다.
할리우드 스타에서부터 저명한 정치인들까지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부부 치료나 인지치료 방식이 그녀의 신비한 직관력과 합쳐져 그녀는 세계적인 상담사로 발돋움했다. 또한 세 장이나 음반을 낸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보석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CarmenHarra.com과 페이스북 carmen Harra- (Wholeliness)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카르멘 하라의 ‘가장 절실한 순간에 신의 도움이 찾아온다’
신은 우리가 괴로움에 처해 있을 때는 언제라도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우리는 신과 강하고 신성하게 연결되어 있다. 저 어딘가에 당신을 사랑하고 언제든지 당신에게 힘이 되어줄 존재가 있다. 그 깨달음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신의 권능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힘을 발휘한다. 당신이 힘들 때 신은 누군가를 보내 당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물론 바닥을 헤매는 상황에서 그 믿음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고통 받는 이들은 종종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무릎 꿇는 자세는 신에게 기도하는 보편적인 표상이다. 태양의 신인 라Ra를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태양의 힘을 받기 위해 해를 바라보았다. 또한 태양을 향해 예를 올리는 힌두교인들은 일출 시간에 맞춰 요가를 시작한다. 태양신인 수리야Surya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도움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눈이 하늘로 향하는가? 하늘에서 우리에게 빛을 내려주시는 신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 너머 저 멀리 어딘가에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을 초월하도록 도와주는,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찬 누군가가 있음을 느낀다. 고대인들은 직관의 힘으로 태양이 지구에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 과학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태양 에너지가 없으면 생명이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들고 저 먼 곳을 바라보며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
라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우리 위에 있는 존재는 초월적이고 우리보다 덜 무겁다. 우리는 하늘의 빛이 우리에게 닿으면 무거운 짐을 벗고 가벼워질 수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릇된 믿음이나 생각 그리고 느낌이 우리 자신을 내리누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높은 곳에 올라가서 새가 땅을 내려다보듯이 자신의 문제를 내려다보고 싶어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날아오르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식을 줄 모르는 태양의 따뜻함은 어둠과 폭풍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준다. 또한 태양빛을 받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우울증
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걸리기 쉽다. 이렇듯 우리는 절대적으로 빛을 흡수하는 것이 필요한 존재다.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를 극복하고 이후의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절박하게 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땅에 발이 묶여 눈앞의 산이 넘을 수 없는 장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산 너머에 있는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몰락과 새로운 탄생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겁에 질려 있다. 하지만 힘과 축복을 바라며 하늘을 올려다본 고대의 인류처럼, 우리도 급격한 변화를 헤치고 우리에게 안전하게 도달하는 저 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일부는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것이며, 또 많은 부분은 이미 우리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신은 절망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를 통해 힘을 베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 여러 단체들, 교회들, 자선단체들, 정부들 그리고 개인들이 각자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성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가난한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버림받은 동물들을 돌보며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이 모든 것은 절박한 도움을 바라는 이들에게 신이 우리를 이용하여 베푸는 도움의 방식이다.
1997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창설한 ‘생명의 목소리Vital Voice’라는 단체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관여하기도 한 이 단체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전 세계의 여성들을 도와주고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여성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 혹은 원치 않은 결혼이나 남편의 학대를 피해 도망쳤다가 붙잡혀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처한 여성들을 돕는다.
많은 유명 인사들이 ‘생명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며 가치 있는 일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애쓰고 있다. 회원 개개인은 자신의 능력이나 인맥을 활용하여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찾고 있다. 예로 들자면 나는 자선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다. 이 단체를 상징하는 메달을 디자인한다. 나는 이 단체를 위한 일을 할 때마다 정의를 위해 낯선 이들을 돕는 일에 기꺼이 나선 위대하고 성스러운 사람들의 일원이 된 느낌이 든다. ‘생명의 목소리’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사랑과 열정이라는 에너지를 가득 품게 된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돕는 일에 다른 이들과 동참하면 누구나 이러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나는 진정으로 믿는다.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어가는 동물이나 학대당하고 버림받은 동물을 구하려는 노력도 그중 하나다.
인간은 빛을 흡수하여 영양소로 바꾸는 식물과도 같다. 다만 여기서 빛이란 사랑 자체를 의미한다. 그저 얼굴을 돌려 바라보고 느끼기만 하면 된다, 우리에게 힘을 주는 사랑으로 가득 찬 영적 에너지인 태양을 그리고 심장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랑을 말이다.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으로 솟아올라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풀처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우리를 가두려 할지라도 우리는 신의 빛을 받을 수 있다. 자연은 아스팔트와 돌 사이를 뚫고 자라나, 고대의 피라미드 시대로 돌아갈 것을 꿈꾸며 힘의 근원을 향해 끊임
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속삭인다. 파괴된 것도 사랑의 힘으로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 고칠 수 있다. 잃어버린 것도 다시금 되돌려놓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속 이야기는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욥의 이야기다. 끔찍한 상실을 겪고도 욥은 엄청난 비극을 내려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무릎을 꿇고 회개한다. 결국 이 위대한 영웅은 더 많은 자손과 재물 그리고 행복이라는 엄청난 보상을 얻는다. 우리도 욥과 마찬가지로 상실을 겪고 나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더 나은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상실에 대한 슬픔 때문에 과거에 갇혀 더 나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슬픔으로 가득 찬 순간에 낙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적 존재에게 도움과 지원을 청하고 나면 다시 온몸으로 태양빛을 느낄 수 있다.
신이 홍수를 일으켜 곡식들과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을 한꺼번에 휩쓸어버린 이야기는 여러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나 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사실 홍수에 떠내려와 강가에 쌓인 침전물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신이 내린 천벌이라 생각하는 일들도 사실은 새로운 것이 자리 잡기 위해 오래된 것이 제거되는 과정일 수 있다. 신은 결코 누구도 처벌하기
를 원하지 않으며 상처 주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홍수에 잠긴 들판에서 울기만 한다면 영적 존재와 힘을 합칠 수 없다. 그런 태도는 고립된 채 지구에 대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지구상에서 서로 도우며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자연의 리듬을 받아들이고 기후의 변덕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변화란 삶의 한 부분이며 그에 저항해봐야 괴로움만 커질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신성한 에너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것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세운 현대 문명은 홍수로 넘실거리는 들판에 세워진 것이며, 미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물에 띄워 내려보내야 한다. 미래의 세계란 일체감 같은 신의 이상이 지금보다 더 실현된 세계를 뜻한다. 현재와 같은 경제나 정치, 사회나 종교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 분리되고 나누어진 세상은 신이 우리가 창조하기를 바란 세상과 거리가 멀다. 강력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홍수나 지진, 지진해일(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는 지구온난화의 결과인 동시에,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스스로 깨어나 신과 함께 우리 자신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자연재해는 우리 삶의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도움의 손길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우선 필요 없는 것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신성한 힘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영적인 조력이라고 해서 언제나 도움이 되는 듯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우선 자기 내면의 문제를 파악해 자신과 세상에 고통을 초래하는 요소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변화가 파괴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저항하던 변화에서 오는 좋은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신은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 신의 뜻을 거역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는 자신이 한 일을 두고 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신은 우리가 일체감을 경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과의 일체성을 자각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머무를 자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가 되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우리의 실천과 신의 도움을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실천할 때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열정을 가지고 신성한 힘과 조우함으로써 신이 우리를 인도할 수 있도록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신성한 창조주의 아름다운 도구이며, 마치 체스 판의 말처럼 신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여 움직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맡겨야 한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예전에는 몰랐던 힘과 창의력,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하다 보면, 내면의 두려움과 불편함도 사라지고 다시금 일체감의 힘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곧 풍요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풍요로움은 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해왔음을 그제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단지 우리가 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우리의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