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A. J. 에이어의『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때때로 무의미한 말 또는 글을 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무의미한 말과 글을 쓴다. 그러나 정확히 누가 언제 무의미하게 말하고 글을 쓰는지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에서 에이어는 자신이 믿기에 절대로 확실한 무의미 식별기, 곧 두 개의 갈퀴를 가진 의미기준을 제시하는데 이것을 그는 검증원리라고 부른다. 이 기준을 가지고 그가 내보이고자 하는 것은 엄청난 양의 철학저술들이 사실은 전혀 철학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한마디로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철학을 젖혀두고, 철학의 본업, 즉 개념들의 의미를 명료히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에이어가 자신의 검증원리를 휘두르고 난 뒤에, 전통적으로 철학에 속한다고 여겨졌던 주제들이 많이 제거되어 철학의 몸집이 크게 줄었다. 예를 들어 형이상학을 위한 여지는 남지 않았다.

에이어가 26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출판한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는 다분히 우상파괴적인 책으로, 철학과 철학함의 성격을 변모시키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있는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데이비드 흄의 저작이나, 이른바 비엔나 서클, 즉 1920년대 후반에 철학 토론을 위해 모임을 가졌고 후에 논리 실증주의라고 알려진 학파를 창시한 지식인 그룹의 저작에서 이미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어의 책은 이런 사상들을 영어로 소개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종합서였다.

검증원리 the Verification Principle

모든 언명statements들이 참 아니면 거짓이라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세 번째 중요한 부류가 있다. 즉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전혀 무의미한 언명들이 있다. 에이어의 검증원리는 이 세 번째 부류의 언명들을 집어내기 위해 마련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이 글을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이다. 내가 손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거짓이다. 그리고 내가 ‘무색의 초록 관념들이 미친 듯이 잠자고 있다’고 말하면 이 언명은 무의미하다. 이 마지막 언명은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처럼 쓸모없는 말과 같다. 이 말은 비록 말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참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할 아무런 기준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증원리는 모든 언명에 대해 두 가지 물음을 묻는다. 첫째로, ‘그 언명은 정의에 의해 참인가?’ 둘째로 ‘그 언명은 원칙적으로 검증 가능한가?’ 이런 시험에 통과하는, 즉 정의에 의해 참이든가 원칙적으로 검증 가능하든, 이런 언명은 모두 유의미하다.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언명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사실 에이어는 보통 언명이라는 표현보다는 명제라는 표현을 쓴다. 명제란 언명의 바탕에 있는 논리적 구조이다. 요점은 ‘고양이가 매트 위에 앉아 있다’라는 언명은 다른 언어로도 같은 뜻으로 표현될 수 있는 한 명제를 표현한다. 이 언명이 프랑스어로 표현되든 스와힐리어로 표현되든 이런 사실은 언명의 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여러 언명들은 하나의 동일한 명제를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에이어는 ‘추정적인’ 명제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여기서 ‘추정적인putative’이란 단어는, 이 명제가 아예 명제가 아닐 수도 있다(즉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해 사용된다. ‘추정적’이라는 말은 ‘가정된supposed’이란 말과 다름없다.

이제 검증원리의 첫 번째 갈퀴인 ‘그것은 정의에 의해 참인가?’의 물음을 고찰해보자. 정의에 의해 참인 명제의 예로서 ‘모든 독신남은 미혼 남자이다’를 들 수 있다. 이 언명이 참임을 확립하기 위해서 실제로 조사를 시행할 필요는 없다. 독신남임을 주장하는 결혼한 남자가 있다면, 그는 ‘독신남’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을 뿐이다. 앞의 언명은 토톨로지tautologous(항진명제), 곧 논리적으로 참인 언명이다. 정의에 의해 참인 언명의 또 하나의 예로서, ‘모든 고양이는 동물이다’를 들 수 있다. 이것 역시 이 언명이 참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기 위해 온갖 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이 언명은 그저 단어들의 의미들에 의해 참일 따름이다. 이런 종류의 언명은 때에 따라 분석적 진리이라 불린다(여기서 ‘분석적’이란 말은 전문적 의미로 쓰임).

이와 달리 ‘모든 독신남은 지저분하다’ 또는 ‘그 어느 고양이도 30년 이상을 못산다’와 같은 언명들은 경험적인 언명이다. 이것들이 참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특정한 관찰이 필요하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조사해보지 않고는 이것들이 참인지 아닌지를 결론지을 수 없다. 이런 언명들은 사실언명이라고 불린다. 이것들은 단어들의 의미에 관련된 것들이라기보다는 단어들이 지시하는 세계의 어떤 성질들에 관해 보고하는 성격의 것들이다. 이런 언명들이 바로 검증원리의 두 번째 갈퀴에 걸려드는 언명들이다.

에이어는 앞의 경험적 언명들에 대해 ‘이것들은 원칙적으로 검증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검증 가능하다’는 말은, 한마디로 참 또는 거짓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검증 가능하다’라는 말은 약간 혼동을 준다. 일상어에서 어떤 것을 검증하는 것은 그것이 참임을 밝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어는 어떤 것이 거짓임을 밝히는 것도 그것을 검증하는 경우에 포함시킨다. 그가 ‘원칙적으로’라는 단어를 물음에 포함시킨 이유는 현실적으로는 테스트될 수 없는 수많은 유의미한 언명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우주공간을 여행할 수 있기 전, 어떤 과학자는 달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을 수 있다. 이것은 그 당시 현실로는 반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반박될 수 있는지 알기는 쉽다. 즉 달의 암석표본을 채취하여 그것이 석회암인지 확인하면 된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이 있었을 당시에는 이 주장을 테스트하기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은 유의미한 언명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달은 크림치즈로 이루어져 있다’와 같은 황당한 언명조차도 유의미하다. 어떻게 하면 이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날 수 있는지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에이어가 ‘유의미하다’는 단어를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상어에서 우리는 거짓이라고 알고 있는 언명을 ‘유의미하다(즉 의미 있다)’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발생했던 것에 대한 언명들은 특히 현실적으로 검증하기가 어렵다. 이런 언명들은 오직 원칙적으로 검증 가능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언명들의 지위를 평가하는 데 발생하게 될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추정적 명제를 고찰할 때 에이어에게는 오직 세 가지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 명제는 유의미하면서 참이다. 그것은 유의미하지만 거짓이다. 그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이 마지막 부류, 즉 전혀 무의미한 발언들이 바로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에서 에이어가 공격하고자 하는 주요 표적이다.

에이어에 따르면 많은 철학자들이 스스로 속아서 자신들이 유의미한 언명을 제시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에이어의 검증원리를 적용하면 드러나듯이 실제로는 그들이 무의미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철학계에서 그런 무의미에 대해 에이어가 주로 사용하는 말이 바로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적 문장은 진정한 (즉 의미 있는) 어떤 것을 말하고자 의도된 문장이지만, 그것은 정의에 의한 참도 아니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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