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
니체의 중요한 저작들 가운데 하나인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는 얼핏 보면 그 스타일에서 그나마 전통적인 철학 에세이에 가장 가깝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Thus Spake Zarathustra』와 같은 다른 책들에서 니체는 경구들에, 즉 독자들로 하여금 멈춰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특별한 종류의 독서를 요구하는 짧고 힘 있는 말투에 호소했다. 반면에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는 하나의 주제 아래 세 개의 에세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심 주제는 도덕성의 근원인데, 여기서 이 책제목의 글 그대로의 번역은 『도덕성의 계보에 관하여』인데, 때로는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라고 번역되기도 했다.* 그 주된 논지는 우리가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도덕적 개념들은 지금은 진부하며 또한 이전의 비기독교적 선조들의 그것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의 초기 저서 『즐거운 학문Gay Science』에서 신의 죽음을 선언한 바 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습을 보면 신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동굴들이 수천 년은 여전히 존속할지도 모르겠다”(『즐거운 학문』 108절).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는 부분적으로 신의 부재가 함축하는 것들과 도덕성에 대한 영향들에 관한 논의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거짓된 신념들에 기초한 낡은 도덕관념들을 물려받았다. 이런 관념들이 쓰라린 원한의 감정에 근원하고 있음을 폭로함으로써 니체는 우리에게 그것들이 영혼을 속박하는 금지문들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그것들을 생명력을 더욱더 키우는 방법들로 대체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런 주제는 어디까지나 텍스트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지 명백히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대부분은 몇몇 주요 도덕개념들의 심리학적 역사적 근원에 대한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니체의 목적은 그저 하나의 도덕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는 도덕 자체의 가치를 문제 삼고자 한다. 만일 도덕적 선이 질투와 원한의 산물에 지나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연 세계의 불변하는 부분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특정한 처지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가지는 궁극적인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니체가 이 물음에 답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그의 목적이다. 그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계보학적이다. 그런데 계보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보학 genealogy
계보학은 말 그대로 당신 조상들을 추적하는 활동, 그리하여 당신의 혈통을 세우는 활동이다. 이것으로써 니체가 의미하는 바는 주로 말의 의미 변천사를 검토함으로써 특정 개념들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니체의 철학적 훈련(언어와 어원 연구)은 그에게 그가 조사하는 말들의 의미 변화를 추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도덕의 계보에 관하여』에서 계보학적 방법을 응용함으로써 도덕의 근원에 관한 종래의 견해가 잘못되었으며, 역사적으로 도덕적 선이나, 죄, 동정, 자기희생과 같은 개념들은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원한의 감정에 근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계보학은 단지 이런 개념들의 역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들에 대한 비판을 위해 의도되었다. 이것들의 진정한 근원을 드러냄으로써 니체는 그 의심스런 혈통을 폭로하고 그럼으로써 니체 당시의 도덕에서 그런 개념들의 상승된 지위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했다. 도덕개념들이 역사를 가진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절대적이며 모든 시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견해를 무너뜨린다. 도덕철학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니체의 대부분의 다른 견해들과 마찬가지로 방법론에 있어서나 주장들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매우 많다.
첫 번째 에세이: ‘선과 악’ 그리고 ‘좋음과 나쁨’ first essay: ood and evil and ood and bad
이 책을 이루는 세 개의 에세이 가운데 첫 번째 글에서 니체는 승인/부인에 관련된 기본적인 용어들, 즉 도덕적 맥락에서 사용될 때의 ‘선’과 ‘악’이란 말들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영국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선’은 본래 비이기적 행위들에 적용되었는데, 이는 행위들 자체가 선해서라기보다는 이것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게 유용했기 때문이다. 점차 사람들은 그 말의 기원을 잊고 비이기적 행위들을, 그 결과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선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니체는 자신의 설명방식과 흡사하게 특정 도덕개념의 계보를 제공하는 이러한 설명을 공격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선하다’라는 말은 최초에 귀족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평민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이 말을 적용하였다. 귀족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했다. 이러한 귀족적 이상에 따라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은 누구든 명백하게 열등하며 따라서 ‘나쁘다’. 이 에세이에서 니체는 (선/악 good/evil의 구분과 대조를 이루는) 좋다/나쁘다(good/bad)의 구분을 언제나 귀족의 관점에서 사용하고 있다. 귀족의 행위는 좋으며 반대로 평민의 행위는 나쁘다.
‘좋다’는 말이 어떻게 해서 비이기적인 행위를 의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니체의 설명은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개념을 통해 주어진다. 니체는 최근에 쓰이게 된 ‘선’과 ‘악’이란 용어의 심리학적 기원으로서 원한resentment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니체가 (좋음과 나쁨에 대조되는) ‘선’과 ‘악’ 사이의 대비에 관해 말할 때 그는 귀족이 아니라 평민의 관점에서 사태를 보고 있음에 유의하라. 즉 그는 비이기적 행위로서의 ‘좋음’과 이기적 행위로서의 ‘나쁨’이라는 현대적 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